지난달 28일 오후 8시 입관예배를 마친 서울 영등포구 신화병원 장례식장 1호실의 공기는 무거웠다. 영정사진 속 정예일(18)군만이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 앞에 국화꽃이 한 송이씩 쌓여갔다. 붉은색 십자가 아래 적힌 아들의 이름을 바라보는 아버지 정규진(47) 선교사의 눈가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인도네시아요? 좋아요. 우리 가족이 다 같이 가는 거니까. 거기에 가면 무슬림들이 많아서 아빠가 할 일도 많겠다.”
12년 전 정 선교사가 인도네시아로 선교지를 결정하고 가족에게 얘기했을 때 여섯 살이던 정군이 신나서 한 말이다. 어린 아들은 선교사인 아빠와 함께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 선교사는 아들이 한 살이던 1997년부터 경기도 광주와 성남에서 외국인 근로자에게 복음을 전해왔다. 대부분이 무슬림들이었다.
그는 총신대 신대원을 졸업하고 예장합동 세계선교회(GMS)에서 선교 훈련을 받았다. 이후 군산경포교회 파송으로 2004년부터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중부인 리아우 지역에서 선교 사역을 하고 있다.
리아우는 한국인을 찾아보기 힘든 곳이다. 사역은 고난의 길이었다. 비즈니스 선교를 위해 세운 커피 공장은 멈추지 않을 정도로만 힘겹게 운영됐다. 생활은 말 그대로 ‘버티는 것’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듬직한 아들이 응원했다.
“예일이는 바닥에 떨어진 동전을 주워서 1달러가 모이면 음료 한 병 사먹고, 몇 푼 안 되는 용돈을 아끼고 아껴 엄마 아빠에게 선물을 사주던 아이였어요. 외롭고 고달픈 사역 때문에 아내가 우울증에 걸렸을 때 엄마를 다독이며 ‘사명’이란 단어를 가슴에 새기게 해 준 것도 예일이었지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은 건 방학을 맞아 한국에 일시 귀국했던 지난해 6월이었다. 가족과 함께 한국을 찾은 지 일주일 만에 예일이는 갑작스런 두통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처음엔 그냥 감기인줄 알았어요. 정밀검사를 했는데 급성 림프종 백혈병이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원인도 알 수 없다는 의사의 말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다시 일어날 줄 알았는데….”
정 선교사는 말을 잃은 채 아들에게 선물 받은 허리띠만 계속 매만졌다. 그는 7개월 동안 이어진 아들의 투병생활을 ‘절망과 희망의 변주곡’이라고 회고했다.
“아프면 아프다고 투정이라도 부렸으면 좋겠는데 엄마 아빠가 힘들어할까봐 꾹 참는 걸 보면서 어찌나 마음이 미어지던지…. 그 와중에도 ‘엄마가 나 때문에 인도네시아를 싫어하면 어떡하나’를 걱정하면서 도리어 ‘선교에 지치지 말라’고 위로하더라고요. 저보다 더 선교사 같았어요.”
이 같은 정군의 간절함이 선교지에까지 닿았던 것일까. 그 사이 선교지에서 주춤했던 기도운동이 다시 일어났다.
“예일이의 건강을 위해 기도 제목을 선교사님들과 나눴는데 그것이 현지 선교사들을 더 연합하게 만들었던 모양입니다. 선교사님들이 ‘예일이 위해서 기도하면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들이 하나 될 수 있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예일이한테 ‘아들아, 네가 엄청난 일을 했구나’라고 얘기해줬더니 활짝 웃었어요.”
장례식장에선 찬송가 ‘나의 갈 길 다가도록’이 흘러나왔다. 정 선교사는 아들과 한 마지막 약속을 들려줬다.
“엄마와 함께 인도네시아를 복음으로 살리고 천국에서 만나자고 했어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우리 가족은 다시 그곳으로 갈 겁니다.” 정규진 선교사 사역 후원(농협 617-02-305686 정규진).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선교에 지치지 말아요” 말 남기고 떠난 아들… 급성 백혈병으로 아들 잃은 정규진 선교사
입력 2016-02-01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