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오전 골목길 어귀에 잔설(殘雪)이 간간이 눈에 띄는 광주 학동의 한 아파트. 환갑을 훌쩍 넘긴 한 남성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구순의 아버지와 장모님이 따로 주무시는 방 두 곳의 인기척을 조심스럽게 살핀다.
“아버님, 장모님. 진지 잡수세요!” “흐흐음, 알았다. 곧 나가마.”
‘한 지붕 두 사돈’이 동고동락하는 이 집의 아침은 밥상 차림을 알리는 문안인사와 이에 답하는 헛기침으로 시작된다. 93세 아버지와 95세 장모를 한 집에 모시고 사는 윤장현(67) 광주광역시장은 20년 가까이 그런 생활을 해오고 있다. 의사와 시민운동가 출신인 윤 시장이 아버지와 장모를 함께 모시게 된 사연은 3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대 조선대 주치의 시절부터 반경 1㎞ 거리에서 부모님과 장인·장모님, 그리고 신혼인 우리 부부 3쌍이 따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장인이 쇠약해지신 1990년부터 포도당 링거와 알부민 주사를 놓아드려야 했는데 날마다 왕래가 쉽지 않아 2년 가까이 처가살이를 했습니다. 장인이 91년 말 돌아가신 뒤 장모님만 모시고 살다가 2000년 바로 옆 아파트에 사시던 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아버님까지 한꺼번에 모시게 됐습니다.”
윤 시장은 “언제나 아버님과 장모님이 곁에 계셔서 든든하다”고 말했다.
그는 “공무원 출신인 아버님이 한 달에 두세 번씩 공직자의 올바른 자세에 관해 직접 양면지에 편지를 써 손에 쥐어주신다”며 “편지에는 따끔한 충고와 따뜻한 격려의 말씀이 담겨 있다”고 소개했다.
나주 다도면 출신인 윤 시장의 부친은 초대 나주시장(이전 금성시)을 끝으로 공직에서 퇴임했다. 윤 시장도 어릴적 3대가 모여 사는 집에서 성장하면서 부모님이 효도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고 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일입니다. 당시 86세로 노쇠하신 할머니 생명이 위태로워지자 어머니가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드시게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마지막 효도라고 여기셨던 것이죠.”
윤 시장의 어머니는 효성이 지극해 1960년대 성균관 명륜장을 받기도 했다. 윤 시장도 할머니의 생전 모습이 늘 떠오른다고 했다.
“제 할머니는 항상 강보(포대기)로 덮은 저를 안으신 채 교회 새벽기도에 나가시곤 했습니다. 요즘도 힘들 때면 언제나 집무실에 놓인 가족사진을 물끄러미 쳐다봅니다.”
윤 시장은 부인 손화정(61)씨와 부모 봉양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은 일화도 소개했다. 2014년 3월 교통사고로 다리가 골절된 윤 시장의 부친이 3주간 병원 치료를 마치고 퇴원하자 의료진은 재활치료를 위해 요양병원 입원을 권유했다.
이어 윤 시장이 입원을 제안하자 부인 손씨는 “한 번 가시면 다시는 집에서 모시기 어렵게 된다”며 남편의 의견에 강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부친은 그 후로도 함께 살고 있다. 윤 시장은 “우리 자식들도 그런 가정환경에서 자라서인지 쌍둥이를 포함한 3명의 딸과 중국 유학 중인 아들이 아버님과 장모님께 하루도 빠짐없이 안부 전화를 드리는 걸 보면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며 환하게 웃었다. 윤 시장은 “과거 노인들의 안과 질환을 무료로 치료한 것도 항상 낮은 곳의 사람들을 먼저 돌봐야 한다는 아버님과 장모님의 가르침 덕분”이라며 “요즘 시정 현안에 쫓기다보니 말벗을 많이 못 해드려 죄송스럽다”고 말했다.광주=글·사진 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
‘한 지붕 두 사돈’ 20년 봉양 윤장현 광주광역시장 “구순 어른들이 곁에 계시니 든든합니다”
입력 2016-02-01 2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