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광고 재벌이자 세계적 컬렉터인 찰스 사치가 런던 골드스미스대학교 미술대학 졸업전을 관람한 일화는 유명하다. 데미안 허스트는 당시 학생 신분이었지만 사치가 작품을 소장하면서 혜성처럼 등장할 수 있었다. 미대 졸업전은 예비 작가들의 ‘예술가적 싹수’를 발견할 수 있는 무대다. 그런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우리 현실에서는 부모와 ‘절친’에게나 초대장을 보내는 가족잔치가 됐다. 시장에서 검증되지 않은 예비 작가들의 작품을 컬렉터들이 눈여겨볼 리 없기 때문이다.
개인전 경력이 한 번도 없는 햇병아리 작가들에게 국내 메이저 경매사가 시장 데뷔 기회를 주는 획기적인 시도를 했다. 서울옥션은 전국 미술대학(원) 졸업생들의 작품을 시장에 내놓은 ‘컷팅엣지 100’ 경매를 2일 실시한다. 100명의 작가 작품을 시작가 100만원에서 경매해 이런 이름이 붙었다.
서울옥션 이옥경 대표는 1일 “미대 졸업생 작품 경매는 처음 시도하는 것”이라며 “앞으로 미술시장을 이끌어갈 젊은 인재들에게 이번 경매가 의미 있는 평가를 받는 첫 단추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이벤트는 미대생들이 졸업전에 오는 외부 사람이 없다보니 실제로 작품을 노출할 기회가 없다는 미대 교수들의 고충을 접한 게 계기가 됐다는 후문이다.
서울대 홍익대 경북대 계명대 강원대 청주대 등 전국 26개 미대가 참여했다. 최윤석 상무는 “학교를 떠나 작품성으로 승부하는 무대가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계명대는 구상, 동덕여대는 개념미술, 숙명여대는 재료적 실험성 등 대학별로 특징을 보이는 것으로 분석됐다.
서울옥션은 낙찰금 전액을 작가 지원금으로 주고, 낙찰수수료(수익금)를 각 대학에 장학금으로 기부한다. 화랑은 기획전을 통해 젊은 작가를 발굴하고, 경매사는 화랑을 통해 한 번 거래된 ‘중고 작품’을 매매한다는 시장의 역할 분담을 깬 파격이다. 전시기획자 A씨는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화랑들이 검증된 작가들만 찾고 신진 발굴은 외면하는 측면이 있었다”며 “이번 경매에서 눈에 띄는 예비 작가들에게 화랑들이 전시 기회를 주는 등 미술시장 판이 커지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미대 졸업작품 경매에 나온다… 서울옥션, 국내 첫 경매 기획
입력 2016-02-01 2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