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 ‘깃발’ 업무보고] 칼 빼든 공정위, 담합 가담자 승진 제한하겠다는데…

입력 2016-01-31 21:04

공정거래위원회가 롯데 사태를 계기로 해외 계열사 현황까지 공시하도록 제도를 보완하기로 했다. 담합 재발을 막기 위해 가담자의 사내 제재를 의무화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정치권으로부터 경제민주화에 손을 놨다는 지적을 받은 공정위가 신년부터 대기업의 사익 편취를 막겠다며 칼을 빼든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31일 발표한 ‘2016년 업무계획’에서 경제민주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천명했다.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은 경제민주화가 퇴색했다는 외부 비판에 대해 “공정위 업무가 모두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것이라 경제민주화란 용어를 별도로 쓰지 않았던 것”이라며 “아무것도 안 한 것처럼 이야기하는 건 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고 지난 28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말했다.

공정위는 해외 계열사를 통한 국내 계열사 소유지배 현황이 드러나도록 총수에게 해외 계열사 현황을 의무적으로 공시토록 할 방침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대기업집단의 소유지분 공시와 정보공개 대상을 국내 계열사로 한정했다. 해외 계열사를 통해 국내 계열사를 우회적으로 지배하는 경우 정부가 소유 구조를 제대로 파악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지난해 경영권 분쟁이 일어난 롯데그룹이 광윤사와 L투자회사 등 일본 내 계열사 지분 내역 공개를 거부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담합 재발을 막기 위해 가담자에 대한 사내 제재 의무화도 추진할 계획이다. 담합 중단이라는 선언적 시행명령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본 공정위는 담합 가담자에게 승진제한 등 인사상 불이익, 감봉 등 사내 제재 규정을 마련토록 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이를 위해 공정위는 현행 근거규정 외에 별도의 법적 근거가 필요한지 검토하기로 했다.

현실적으로 정부가 민간 기업의 인사에 간여할 법적 근거가 있는지, 기업의 이익을 위해 일한 담합 가담자에게 기업 스스로 페널티를 적용할 것인지 회의적인 목소리도 있다. 기업 내부에서 윗선의 지시가 없다면 담합이 어렵다는 특성상 경영진이나 기업 오너를 제재하지 않고 적발된 이들 처벌만 강화하면 꼬리 자르기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정위는 독과점적 시장 구조 개선 방안도 마련했다. 공정거래법을 집행하고 법 위반 행위를 제재하는 것에서 나아가 독과점적 시장에 대한 분석을 강화해나가겠다는 것이다. 석유화학·건설·물류 분야 등 올해 예상되는 대형 인수·합병(M&A)에 대해선 사전 예비검토를 통해 선제적으로 대응할 계획이다. 경쟁을 제한하는 M&A를 애초에 차단해 독과점 형성을 막겠다는 것이다. 의료·제약 분야에서 빈발하고 있는 특허이용권 남용 행위에 대한 감시 강화에 나서고 O2O(Online to Offline) 등 기술 혁신이 활발한 신성장 분야에 대한 경쟁 제한 행위도 지속적으로 점검해 나갈 계획이다. 환자 모르게 의사를 바꿔치기할 수 없도록 표준약관 개정을 추진하고 각종 포인트·마일리지와 관련한 불공정행위 실태 점검에도 나선다.

지난해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행위를 막겠다며 신설한 법 조항의 문제점은 개선되지 않았다. 정부는 일감 몰아주기나 회사 기회 유용 등을 막기 위한 규제를 공정거래법(제3장)에 신설했다. 하지만 거래 금액이 거래 상대방 매출 총액의 12% 미만이고 200억원 미만인 경우나 ‘효율성·보안성·긴급성’ 등이 필요한 경우에는 규제에서 빠져나갈 수 있도록 했다.

세종=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