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미술은 1985년 군사정권이 불온한 미술로 낙인찍기 위해 고안해낸 관제 용어다. 지금은 당시의 시대 저항적인 미술을 부르는 고유명사처럼 쓰이고 있다. 그 민중미술을 단색화를 잇는 한국 대표 미술로 해외시장에 데뷔시키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난 28일 이른바 민중미술 작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리얼리즘의 복권’ 전시 개막식에서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현실참여적인 미술을 오늘의 시각에서 재조명하고자 마련했다. 2월 28일까지 이어지는 전시는 권순철(72) 신학철(72) 민정기(67) 임옥상(66) 고영훈(64) 황재형(64) 이종구(62) 오치균(60) 등 8명 작가의 기존 작품을 중심으로 기획됐다. 1940∼50년대생인 이들은 1980년대 정치·노동·농촌의 치열한 생존 현장에 작품세계의 뿌리를 두고 있다. 선배 세대인 1930년대생 박서보 하종현 등이 단색화라는 추상적 경향으로 현실을 외면했던 것과 차이가 있다.
지하 1층에서 지상 5층까지 작가별 전시 공간은 현실을 고발하는 미술의 힘으로 꽉 차 있다. 머리띠 두른 노동자, 이한열 열사 등 인물 군상을 엮어 불기둥처럼 만든 신학철의 근현대사 시리즈, 시퍼런 낫을 화면 가득 걸쳐 놓은 이종구의 비료포대 그림, 쪼글쪼글한 피부와 순박한 눈빛이 폐광촌 마지막 광부를 연상시키는 황재형의 인물화…. 군부독재에 항거하며 이념으로 무장한 민중미술 작가도 있지만 표현의 수단으로 리얼리즘을 택한 작가도 포함돼 있다. 하이퍼리얼리즘 경향의 고영훈 작가가 대표적이다. 리얼리즘 영역의 확장으로 볼 수 있다는 시각에 대해 민중미술의 정신성이 흐려지는 것 아니냐는 반론도 있다.
민중미술을 포함한 리얼리즘 계열 작가들이 함께한 것은 1995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개최됐던 ‘민중미술 15년 전’ 이후 처음이다.
나아가 이번 전시는 세계 시장 진출을 포석에 두고 영문도록과 중문도록을 준비했다는 점에서 민중미술의 당당한 복권 시도로 볼 수 있다. 가나아트센터 이호재 회장은 “1980년대의 현실참여 작가들은 위에민준, 쩡판즈 등 중국 정치 팝아트 작가들에 비해서도 매력적이지만 해외 시장에 제대로 소개되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전시를 기획한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도 “민중미술은 나라 밖에서 보면 한국적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조”라며 “1930년대 멕시코 벽화운동이나 중국의 판화운동에 버금가는 독자적 미술운동이다. 시장에서 가치를 재평가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전시는 불온시됐던 전력을 의식한 듯 ‘민중미술’이라는 용어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민중미술이 1980년대부터 ‘민중아트’라는 이름으로 해외 전시에서 소개된 만큼 용어를 살릴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신학철 작가는 “리얼리즘이라는 표현으론 화가들이 느꼈던 시대에 대한 분노, 저항의 느낌이 잘 전달되지 않는다”면서 “인상주의, 큐비즘도 처음에는 비평가들이 비꼬는 의도에서 쓴 용어지만 지금은 미술사에서 당당히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돌아온 민중미술, 해외로 시선… ‘리얼리즘의 복권’展 열고 진출 모색
입력 2016-01-31 2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