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피플] 신체 장애를 ‘행복’으로 바꾼 신명진씨

입력 2016-01-31 19:56
‘희망 전도사’ 신명진(39)씨가 지난 25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서울도서관에서 절단된 오른팔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다섯 살 사내아이가 소금기차에 깔려 두 다리와 오른팔을 잃었다. 1981년 인천 소래포구에서의 일이다. 소식을 듣고 병원에 달려간 어머니는 간호사 품에 안긴 아이를 보고 그 자리에서 실신했다. 생명은 건졌지만 심각한 장애가 남았다. 아이는 자라면서 누군가 원망할 대상을 찾았다. 하나님이었다.

‘그 아이’ 신명진(39·서울도서관 사서)씨는 하나님을 원망했었다. 그리고 나서야 그 존재를 인정했다. 대학교를 졸업하던 해 친구와 함께 인천 만수동의 작은 교회에 나가면서였다.

하나님을 알게 되자 축복된 삶임을 깨달았다. 좌절과 고통 속에 살던 그 아이는 청년이 돼 장애인수영 전국대회에서 금메달을 땄고 미국 뉴욕에서 마라톤을 완주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완주하도록 용기와 희망을 준 멘토 등 늘 ‘하나님의 천사’가 있어 가능했다. 신씨는 “주변 사람 하나하나가 하나님이 보내주신 분들”이라며 “이제는 제가 힘들고 지친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25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서울도서관에서 그를 만났다. 사고 후 어머니는 매일같이 신씨를 업고 병원 옥상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 봤다고 했다. 삶을 끝낼 생각까지 했던 것이다. 다섯 살 아이는 남아있는 왼팔로 어머니의 목을 감싸며 말했다. “엄마, 내가 행복하게 해줄게.”

2001년 대구대를 졸업한 뒤 인천에 있는 작은 홍보회사에 다닐 때였다. 어느 날 사무실 밖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한 30대 소아마비 장애인이 휠체어에서 내려 혼자 힘으로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신씨는 한동안 그 모습을 지켜만 봤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같은 장애인이지만 신씨는 그렇게 할 자신이 없었다. 그 장애인은 자신을 ‘인천 장애인수영 대표’라고 소개했다. 2006년 전국장애인체육대회 수영 금메달리스트인 신씨가 수영을 시작한 건 그때부터다.

“절단장애인은 남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싫어해요. 그런데 수영을 하려면 의족·의수를 모두 빼고 무장해제를 해야 하죠. 그러나 그때 만난 장애인 형을 보며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졌어요.”

신씨는 2011년 11월 뉴욕마라톤대회에 나가 42.195㎞ 풀코스를 비장애인들과 함께 완주했다. 당시 그는 도저히 마라톤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대회 며칠 전 오른쪽 다리 절단 부위에 손톱만한 종기가 나 의족이 닿을 때마다 고통이 밀려왔다. 그래도 신씨는 출발선에 섰다. 출발 총성이 울리자 다른 참가자들은 내달리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씨 혼자만 남게 됐다. 25㎞ 지점쯤 이르러 도저히 걸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 찰나 미국인 여성참가자 캐서린이 함께 걷기 시작했다. 너무 힘들어서 한걸음 걷고 나무에 의지해 쉬다가 다시 걷기를 반복했다. 캐서린은 앞서 가지 않고 끝까지 동행했다. 9시간 50분이 지나 결승점에 도착한 신씨는 캐서린을 안고 펑펑 울었다.

“그녀가 없었으면 중도에 포기했을지도 몰라요. 포기하지 말라고 하나님이 보내주신 천사였던 거죠. 완주를 한 뒤 제 마음속을 채운 건 뿌듯함이 아니라 ‘감사’였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신씨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요. 다른 사람보다 부족하고 열악한 조건이지만 하나님은 장애인 형과 캐서린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통해 제게 힘내라고 응원해 주셨어요. 예전엔 하나님께 ‘제가 고난 받고 상처받을 때 어디에 계셨느냐’고 원망했지만 이제는 이렇게 기도해요. ‘하나님, 제가 다른 이들에게 힘과 용기를 줄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