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안현미] 황씨네

입력 2016-01-31 17:46

겨울밤 홍남교 다리 건너 홍제천변 작은 단골집에서 우리는 유쾌하게 잔을 부딪친다. 2010년부터 드나들었으니 벌써 햇수로 6년째. 오늘은 소설 쓰는 선배의 새 책 출간 축하 자리다. 이불 속에서 뭉그적거리다 제일 늦게 도착한 나는 먼저 온 이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비워둔 자리에 착석한다. 이로써 술자리의 참석 인원 아홉 명 전원이 모였으므로 잔을 채우고 건배를 한다. 3만부를 위하여!(3만부? 3000부라도 나갔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멘트는 안 들은 걸로. 그건 좀 쓸쓸한 이야기니까).

겨울밤은 깊어가고 맥주, 소주, 막걸리. 각자가 편애하는 술로 쉴 새 없이 잔이 채워지고, 가게 주인이 쉴 틈 없이 안주를 주문한다. 오뎅탕, 계란말이, 돈가스튀김, 골뱅이무침. 번데기탕…. 번데기를 못 먹는 사람과 번데기탕을 유난히 좋아하는 사람이 함께 웃고 함께 유쾌한 밤.

각자 살아온 인생도 살아갈 인생도 다르지만 편애하는 작가가 같다는 이유로 몇 년째 만나오고 있는 사람들. 회계, 불문학, 국문학, 행정학, 지역개발학…. 각자의 전공도 다르고 출판사 편집자, 게임회사 회계파트 팀장, 전업주부, 사무원시인, N포 세대를 온몸으로 대변하고 있는 80년대생 청년까지. 각자 직업도 다른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나면 기어이 행복해지고 마는 사람들.

어떤 시간을 어떤 공간을 어떤 사람을 함께 좋아하고 보내고 기억한다는 것은 참 아름다운 일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화장실에 다녀오는 길에 천변 단골집 ‘황씨네’집 뿌옇게 흐려진 겨울 창문 위에 손가락으로 썼다. “아! 아름다운 인생”이라고. 그래놓고 문득 쓸쓸해진다. 흘러나오는 음악 때문이리라. ‘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 번 잊지 못할 사랑을 만나고, 잊지 못할 이별도 하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는 동안에 또 쓸쓸해지러 오겠지. 홍남교 다리 건너 홍제천변 흐린 주점 황씨네로.

안현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