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망자(亡者)의 메모’가 결국 이완구(66) 전 국무총리의 발목을 잡았다. 1심 유죄 선고에는 성 전 회장의 통화 녹취록, 정치인 리스트와 함께 성 전 회장 측근들의 진술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전 총리는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형이 확정될 경우 10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이 전 총리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부장판사 장준현)는 29일 성 전 회장이 사망 직전 남긴 언론 통화 녹취록 및 정치인 8명이 적힌 메모지의 증거능력을 인정했다. 통화 내용이 큰 파장을 불러올 수 있고, 검찰 수사로 진위가 밝혀지리라 예상할 수 있는 점을 고려할 때 거짓말로 보긴 어렵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어 성 전 회장의 운전기사, 수행비서, 자금관리인 등의 진술을 종합할 때 이 전 총리에게 경남기업 비자금이 전달된 정황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자금이 여러 명을 거친 터라 관련자들이 전부 입을 맞춰 거짓 진술을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선 성 전 회장 비서진의 카카오톡 대화, 톨게이트 기록 등을 근거로 성 전 회장이 이 전 총리의 선거사무소를 방문한 점이 인정됐다. 측근들이 박스에 포장된 현금을 쇼핑백에 넣어 성 전 회장 차량 뒷자리에 보관한 점, 쇼핑백 위쪽을 접어 금품 박스가 안 보이게 포장한 점 등 진술이 구체적 경험에 근거했다고 판단했다. 수행비서가 “성 전 회장과 이 전 총리가 독대하는 방에 들어가 성 전 회장에게 (돈이 든) 쇼핑백을 건넸다. 성 전 회장이 사무소를 나올 땐 빈손이었다”고 진술한 것도 유죄 근거가 됐다. 이런 진술들이 성 전 회장의 메모와 녹취록에 부합한다고 봤다.
이 전 총리에게 유죄가 선고됨에 따라 홍준표(62) 경남지사 1심 재판에서도 유죄 선고 가능성이 높아졌다. 홍 지사 사건은 금품 전달자가 생존해 있어 검찰 안팎에서는 이 전 총리보다 혐의 입증이 수월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특히 통화 녹취록 등의 증거능력이 인정된 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성 전 회장은 녹취록에서 “내가 홍준표를 잘 안다. 당 대표 출마 당시인 2011년 5∼6월쯤 1억원을 전달했다”고 말했었다.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은 지난해 7월 리스트 속 정치인들 중 이 전 총리와 홍 지사를 불구속 기소했다. 이 전 총리는 2013년 4월 4일 충남 부여 재·보궐선거 사무실에서 3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다. 홍 지사는 2011년 6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성 전 회장의 측근인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에게 현금 1억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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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1-29 2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