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되면 문화재’ 기준 어떻게 (下)] 모호한 추상적 기준이 문제… 전문가도 오락가락

입력 2016-02-01 04:03
인천국제공항 문화재감정관실에서 반출 허가 신청이 들어온 도자기를 ‘도자기 내시경’으로 불리는 전자현미경을 이용해 감정하는 모습(왼쪽 위 사진). 내부 재질은 물론 표면도 확대해 볼 수 있어 제작 시기를 보다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골동품상점 동예헌 주인 안백순씨가 소장품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50년만 넘으면 문화재가 되니까 반닫이, 의복 같은 것도 민속자료라는 이유로 반출이 안 되고 있다”며 “1980년대 초까지만 우리 목가구가 외국인에게 큰 인기를 끌었지만 지금은 손님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오른쪽은 의재 허백련의 산수도 대련. 문화재청, 마이아트 옥션 제공
“문화재급이야 물론 안 되지요. 그런데 50년이 문화재 기준이다 보니 교조적으로 적용해 그냥 다 막아요. 시중에서 수십만 원도 안 되는 고려청자가 공항을 통과해 외국에 팔려나간 사례가 있는지 문호재청에 한번 물어보라니까요?”(골동품상 A씨)

“고려청자 반출이 과거보다 줄긴 줄었어요. 그러나 그나마 50년 기준이 생겨났으니까 근대기 유물이 보존되고 있는 겁니다. 없었다면 영화인 나운규의 아리랑 필름 같은 일제 강점기 근대문화재가 다 나갔을 거예요.”(공항 문화재감정관실 감정위원 D씨)

‘문화재 최소 나이 50년’ 기준이 고미술 시장을 고사시킨다는 골동품 상인들의 불만이 높다. 제도 미비점, 운용 과정의 문제점 등으로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재 약탈이 심했던 우리 역사에 비춰 손대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문화재 해외 반출 규제가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개선점은 없는지, 외국에서는 어떻게 하는지 등을 살펴봤다.



◇모호한 문화재 기준…골동품상은 헷갈려=A씨는 31일 “문화재 기준이 50년이냐, 100년이냐를 떠나서 기준이 모호한 게 무엇보다 문제”라고 꼬집었다. 다른 골동품상 B씨는 “고려청자 등 도자기류는 아무리 질이 낮아도 외국으로 못 나간다. 이건 골동품시장의 상식”이라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고미술 경매장을 돌면 청자접시라도 질이 낮은 건 십 만원은 고사하고 1, 2만원을 부르는 게 수두룩하다. 술값 보다 싸니 이러 저리 굴러다니다 결국 나라 안에서 자연파손 되는 게 더 많다”고 했다.

현행법(문화재보호법 60조)은 고서화, 도자기, 서책 등 휴대 가능한 고미술품 중 제작·형성된 지 50년 이상이면서 문화재로서 가치가 있을 때 국외 반출(유통)을 규제한다. 그런데 시행규칙(42조)에서는 그 범위와 관련해 산수화, 인물화, 도·토기, 자기 등 종류만 나열한다. 인물화도 고사인물화, 도석인물화 등으로 구분할 뿐이다. 물론 파손 및 훼손이 심한 경우는 제외하도록 돼 있다. 또 조형성이나 제작기법이 졸렬하고 형태, 양식, 재료 등에서 특이성이 없어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가치 혹은 민속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없을 시는 제외하도록 했다.

이 규정은 지나치게 추상적이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 판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골동품상들의 불만이다. C씨는 “‘이거 해외로 가져가도 되나요?’라고 외국인이 물으면 선뜻 된다고 말 못할 때가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 예컨대 상여에 썼던 나무 인형인 ‘곡두’를 외국인들이 굉장히 좋아하지만 문양의 수준이 어떤 경우에 반출 허가가 되는지 알쏭달쏭해 보다 구체적인 기준이 제시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감정관 인력 턱없이 부족…제대로 걸러낼까=인천국제공항 감정관실 관계자는 “기준이 분명치 않아 판정하기가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며 “그러나 오류를 줄이기 위해 가급적 복수의 감정위원이 감정에 참여한다”고 말했다. 감정위원들은 회화, 도자, 공예 등 관련 분야의 석·박사 학위 소지자들로 구성된다. 그러나 인천국제공항은 상근 감정위원이 7명이지만 김포·부산·김해공항 등 나머지 공항·항만 감정관실에는 상근 감정위원이 3명 이하다. 회화만 해도 전통회화, 근대회화, 불교회화, 종교회화 등 다양한 상황에서 이 정도 인력으로 고미술품 전반을 감정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1∼3명의 비상근 위원으로 부족한 부분을 메운다 해도 한계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러시아, 중국으로 가는 항공편과 배편이 있는 양양국제공항과 속초·동해 국제여객터미널은 1명의 상근 감정위원이 이 세 곳을 커버하고 있다. 군산·평택항은 아예 상근 감정위원이 없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전국 네트워크를 갖춘 화상시스템을 이용해 다른 감정관실과 협업해 감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불화 및 불상 권위자인 E씨는 “나도 도자기나 직물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한 분야를 안다고 다른 분야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 “실물을 육안으로 보지 않고 화상으로 감정한다는 건 실수의 여지가 많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골동품상들은 사정이 이러다보니 문화재급만 잡아야 하는데 무조건 다잡고 보자는 식의 보신주의 감정이 이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문화재 나이를 종전처럼 100년 이상으로 올려 잡아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외국은 어떻게… 개선책은 없나=외국에서는 문화재 기준 나이가 100년 이상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한국고서협회 김민재 회장은 “유럽연합(EU)은 100년 이상으로 정하고 있다. 러시아도 100년 이하 고서는 해외에서 자유롭게 판매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비교적 고미술품의 해외 유출이 자유롭단다.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는 “역사가 오래되고 식민지를 경험해 외국에 의한 문화재 강탈이 심한 나라일수록 규제가 강한 경향이 있다. 중국은 우리보다 더 엄격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도 특수한 상황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규제가 필요하다”면서 “고려청자 같은 경우도 규제가 조금만 느슨해지면 다 빠져나갈 것”이라고 했다. 문화재에 대한 인식 수준이 높아질 때까지 더 기다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골동품상 C씨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이 높으면 자연스럽게 문화재 소중함을 인식하게 될 것”이라며 “지금처럼 국내에서만 유통돼 가격이 떨어지면 오히려 우리문화재 가치를 모르게 된다”고 반박했다. 한 문화계 인사는 “중국은 근대화가의 경우 A·B·C·D 등급으로 분류해 해외 반출 때 차등적용하고 있다”며 “우리도 좀 더 조건을 구체화하고 분화하는 방향으로 고민해 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문화재감정관실

문화재보호법 제60조는 국보·보물로 지정되지 않았더라도 제작·형성된지 50년 이상이면서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서화, 도자기, 공예품, 고서 등 이른바 ‘일반 동산 문화재’의 해외 반출을 금지한다.

이를 위해 문화재청은 인천공항·김포공항·속초항·평택항 같은 국제공항과 국제항만에 문화재감정관실을 설치해 운영 중이다. 공항 검색대에서 의심이 가는 물품이 발견될 경우 감정관실에서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는지 감정한다. 밀반출 의혹이 있을 때는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하기도 한다. 정상적인 경우는 출국 당일 감정관실에서 현품을 제시해 감정을 받아왔다. 당일 감정의 번거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문화재청은 올 1월부터 사전예약감정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문화재청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하면 디지털 사진만으로 반출가능 여부를 확인해준다. 실물을 봐야 할 경우에는 직접 내방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