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임지영이 한국인 최초로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기악 부문에서 우승할 때 연주한 바이올린은 1794년산 과다니니 크레모나다. 임지영은 2014년 4월 그동안 써오던 국산 악기에서 과다니니 크레모나로 바꾼 지 5개월 만인 그해 9월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3위를 차지하더니, 이듬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임지영이 사용한 과다니니 크레모나는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악기은행으로부터 3년간 무상으로 대여 받은 것이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1993년부터 27세 이하 연주자들을 대상으로 무상으로 명품 악기를 대여하는 악기은행 제도를 운영해 왔다. 바이올린 8대, 첼로 1대, 피아노 6대 등 15점을 보유 중이다. 임대 기간은 기본 3년이지만 연주자의 성과에 따라 갱신되기도 한다. 보험료와 악기 관리까지 모두 재단에서 부담함으로써 연주자는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오래 될수록 값이 떨어지는 대부분의 악기와 달리 바이올린이나 비올라, 첼로 등 현악기는 17∼18세기 이탈리아 스트라디바리, 과르네리, 아마티, 과다니니 가문에서 만들어진 것을 최고로 친다. 스트라디바리는 현재 전 세계에 600여점만 남아 있어 값이 엄청나다. 스트라디바리 바이올린 ‘레이디 블런트’는 2011년 경매에서 무려 1590만 달러(당시 162억원)에 낙찰되며 악기 거래 최고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따라서 젊은 연주자들이 명품 고악기를 접하기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구미 선진국과 일본에서는 기업 메세나 차원에서 유망주들에게 악기를 대여해 주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는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삼성문화재단, 벽산문화재단이 악기은행을 운영하고 있다. 전문가 자문위원회를 통해 대여자를 정하는 삼성문화재단이나 벽산문화재단과 달리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오디션을 통해 선정한다.
올해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오디션에서는 임지영이 사용하던 과다니니 크레모나를 비롯해 1763년산 과다니니 파르마, 1740년산 도미니쿠스 몬타냐나 등 바이올린 3점을 대여 받을 연주자를 뽑게 된다. 임지영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에 따른 부상으로 1708년산 스트라디바리 허긴스를 4년간 대여 받으면서 최근 과다니니 크레모나를 반납했다. 과다니니 파르마는 권혁주가 오랫동안 써오다 최근 나이가 30살을 넘기면서 반납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1월 25일부터 2월 4일까지 오디션 응모를 받은 뒤 2월 12일 DVD 심사와 2월 26일 라이브 연주를 통해 악기 대여자를 선발한다. 국제 콩쿠르에서는 아무래도 명품 고악기를 가진 연주자가 유리한 만큼 임대 오디션 경쟁률은 평균 20대 1을 웃돈다.
특히 과다니니 크레모나, 과다니니 파르마, 1774년산 과다니니 투린 등 세 바이올린은 국제 콩쿠르에서 유독 뛰어난 성과를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과다니니 투린은 클라라 주미 강이 2010년 인디애나폴리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할 때 사용했고, 과다니니 파르마는 조가현이 2009년 워싱턴 국제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할 당시 썼다.
과다니니 크레모나의 경우 ‘행운의 바이올린’으로 불릴 정도로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연달아 냈다. 2004년 권혁주가 칼 닐센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을 차지한 이후 2006년 최예은의 몬트리올 국제 음악 콩쿠르 2위, 2013년 김봄소리의 ARD 국제 콩쿠르 1위 없는 2위, 지난해 임지영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1위 등을 기록했다. 이번 오디션에 3개 바이올린 가운데 2개가 나온 것이다.
박선희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팀장은 “악기마다 성격이 매우 다른데 과다니니 크레모나는 환경에 민감하지 않으면서, 사람으로 치면 청년처럼 건강한 소리를 내는 게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다니니 투린은 좋은 소리를 뽑아낼 줄 아는 연주자가 아니면 버거울 수 있다. 악기는 자신에게 맞는 연주자에게 가야만 제대로 소리가 나온다”고 덧붙였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임지영,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의 순간 함께 한 ‘행운의 바이올린’ 새 연주자 찾습니다
입력 2016-02-01 04:09 수정 2016-02-01 17: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