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 205호,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1급, 밥 푸는 주걱 모양의 검은부리로 물 속을 휘저어 먹잇감을 찾는 새. 몸길이는 약 85㎝로, 겨울철에는 흰색 깃털로 치장을 하고 여름철에는 가슴에 갈색 띠를 두르며 한껏 멋을 부리는 저어새이다. 전 세계적으로 동아시아의 특정지역에만 서식하는 국제적인 희귀조이다.
월동지의 북방한계선이 제주도인 저어새는 홍콩 대만 중국 일본 베트남 등 각기 다른 곳에서 겨울을 보내고 3주 내외 여정으로 봄기운이 가득한 4월 초 서해 경기만 일원의 습지역에 모여드는 철새다. 각기 다른 월동지를 지닌 이들 모두가 이곳으로 모이는 이유는 종족 번식 때문이다.
한반도 서해안 남북 접경지역의 무인도가 이들의 주된 번식지임이 밝혀진 것은 불과 10여년 전(1999년)이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총 20곳의 번식지 중 18곳이 한반도에 위치하는데, 임진강 하구의 유도, 강화도 각시암, 경기만의 석도, 연평도의 무인도, 북한지역의 덕도 등이다.
이들이 이곳을 번식지로 선택한 이유는 안전성과 먹거리 때문이다. 이곳의 무인도나 기암절벽은 천적으로부터 자신과 새끼를 보호해 주고, 행동반경 20㎞ 이내에 먹잇감이 풍부한 사냥터가 있다. 흔히 갯벌이 이들의 가장 중요한 사냥터로 인지되지만 이들의 종족 유지를 위해서는 논과 같은 민물습지가 필수적이다. 이는 전체 무리의 약 60%로 추정되는 어미 저어새들이 염분 분해 능력이 낮은 부화 초기 어린새끼들을 위해 민물습지 먹잇감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은 2000년 4억3000여㎡(여의도 면적의 53배)의 강화갯벌을 천연기념물 ‘저어새 번식지’로 지정했다. 그러나 강화 일원의 개발압이 증가하면서 논이 사라지고 담수역이 감소하고 있어 저어새 보존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경기만 일원의 논과 습지를 인류와 절멸위기의 생물종 간 공존의 장으로 삼는 포용력이 절실하다.
이집트의 제왕 파라오를 연상시키는 황금빛 혼인 성표를 지닌 눈매, 사자의 갈기처럼 부푸는 매력적인 노란 댕기깃, 뱃사공 노 젓는 모습의 풍류를 지닌 저어새는 현재 불과 2600여 마리. 한반도의 봄을 그리며 겨울을 나고 있는 이들 번성의 꿈은 이루어질까.
노태호(KEI 선임연구위원)
[사이언스 토크] 저어새의 꿈
입력 2016-01-29 17:46 수정 2016-01-30 1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