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하불명(燈下不明), 등잔 밑이 어둡다. 등잔 밑에는 받침대가 있어 이에 가려져 그림자가 생기는데, 먼 곳보다 가까운 곳을 보지 못한다는 뜻이다. 최근에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이 연이어 언론에 보도되었다. 냉장고 속에서 발견된 초등학생 시신, 부모의 감금과 학대를 지속적으로 당하던 소녀가 허기를 참지 못해 가스배관을 타고 탈출한 일 등. 이 보도를 접한 주변의 이웃들에겐 그야말로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절로 떠오를 것 같다.
우리 주변에서는 부모의 소유욕에서 기인하는 훈육을 빙자한 폭행이나 가정 붕괴로 인한 방임 등 아동학대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대부분 알지 못하며, 혹은 알아도 남의 가정사란 이유로 무심코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2014년 전국 아동학대 현황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 51개 아동보호전문기관을 통해 아동학대로 신고 접수된 사례는 2013년에 비해 30% 늘어난 1만7791건이다. 단순 수치만 비교하자면 아동학대가 크게 증가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들의 높은 관심으로 신고가 증가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기에 꼭 나쁘게 볼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아동학대는 누군가가 신고해주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어른의 지배 아래 있는 힘 약한 아동이 직접 학대를 당하고 있다고 경찰에 신고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는 보육 교직원, 유치원 및 초·중등 교직원, 의료인, 시설종사자 및 관련 공무원 등 직무상 아동학대를 발견할 개연성이 높은 24개 직군을 ‘신고의무자’로 규정하고, 그 의무를 위반할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신고의무자들이 제 역할을 다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이웃을 비롯한 지역사회 전체가 함께할 때 소중한 우리 아이들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아동학대 신고는 2014년 9월 29일 특례법 시행과 함께 112로 통합되었다. 인사성이 밝던 이웃집 꼬마 아이가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는다면, 앞집 아이가 또래 아이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비쩍 말랐다면, 내 아이라는 생각으로 한 번쯤 학대를 의심해 보기 바란다.
교육부와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부터 장기결석아동에 대한 합동점검을 진행하고 있고, 경찰에서는 소재불명 및 학대의심 사건을 접수 받아 소재 추적과 함께 학대 여부를 수사하고 있다. 아울러 학교전담경찰관을 활용해 합동점검 과정에서 취학독려 조치가 내려진 사안에 대해 아동의 학교 복귀를 최우선 고려해 ‘교육적 방임’ 여부에 대해서도 꼼꼼히 살펴보고 있다.
아동복지법에서는 신체적·정서적 학대 행위는 물론, 자신의 보호·감독을 받는 아동을 유기하거나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적 보호·양육·치료 및 교육을 소홀히 하는 방임 행위도 엄연히 범죄로 규정하고, 이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경찰은 정당한 이유 없이 아동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 ‘교육적 방임’에 대해 아동복지법 위반 여부를 적극 검토해 수사할 방침이다.
아동들은 우리 미래사회의 희망이다. 이들이 학대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될 수 있도록 모두의 노력이 절실한 때다. 한 통의 112 신고전화가 등잔 밑 아동들에게 밝은 빛이 되어 줄 것이다.
조현배 경남지방경찰청장
[기고-조현배] 112는 학대받는 아동의 빛
입력 2016-01-29 17: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