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염성덕] 추억의 고드름

입력 2016-01-29 17:44

전 세계를 강타한 한파와 폭설로 유행한 말이 있다. ‘패왕급 한파’ ‘스노질라’ ‘스노마겟돈’ ‘스노포칼립스’. 중국을 급습한 최악의 혹한에 중국인들은 패왕의 급을 붙였다.

스노질라는 언론이 미 동부를 덮친 눈 폭풍을 표현한 것으로, 눈과 가상의 괴물인 고질라를 합친 말이다. 스노마겟돈은 눈과 아마겟돈을 조합한 것이고, 스노포칼립스는 눈과 세상의 종말을 뜻하는 아포칼립스를 결합한 단어다.

올해 한국에는 미국이나 중국처럼 특이한 단어를 사용할 만큼 폭설이나 한파가 내습하지 않았다.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스노질라 같은 표현을 쓰기에는 적설량이 적었고 기온도 외국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오래전부터 눈과 관련된 단어가 있다. 바로 고드름이다. 눈 쌓인 지붕의 처마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유지영이 작사하고 윤극영이 작곡한 동요 ‘고드름’은 수많은 어린이들의 애창곡이었다. 어린이들이 외래 민요나 창가(唱歌)에서 벗어나 우리만의 동요를 부르게 하기 위해 1924년 발표됐다. 모두 3절로 되어 있는데 1절의 노랫말이 널리 알려져 있다. ‘고드름 고드름 수정 고드름/ 고드름 따다가 발을 엮어서/ 각시방 영창에 달아놓아요.’

처마 밑에 주렁주렁 달린 고드름은 놀이 도구였다. 고드름을 따서 손에 쥐고 동네 아이들과 전쟁놀이를 했다. 고드름이 부딪치면 쉽게 깨지기 때문에 칼싸움이라기보다는 칼싸움 흉내를 낸 것이다. 긴 장대를 이용해 고드름을 한꺼번에 떨어뜨리는 놀이도 기억에 남는다.

고층 건물이 즐비한 요즘엔 느닷없이 떨어지는 고드름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높은 곳에서 낙하하는 고드름은 파괴력이 대단하다. 특히 매우 추웠다가 날씨가 풀리는 날에 조심해야 한다.

고드름을 아이스케이크처럼 먹었다면 요즘 어린이들이 이해할까. 지금은 사시사철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지만 반세기 전에는 여름에만 아이스케이크를 먹었다. 한 손에 뽑기를 들고 다른 손에 고드름을 들고, 뽑기를 먹고 고드름을 핥으면 아이스케이크를 먹는 기분과 비슷했다. 이 겨울에 고드름과 뽑기를 함께 먹으면서 아련한 추억에 잠겨나 볼까.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