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안철수 의원이 제1야당을 떠난 뒤 야권 세력들은 저마다 ‘혁신’ ‘새정치’ ‘젊은 정당’을 강조하며 자신이 ‘진짜 야당’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민들이 보고 들은 것은 유훈 정치와 과거사 논란 등을 주제로 서로를 향해 내뱉은 독설뿐이다. 이른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상황이 매일 연출된 야권의 1월은 아침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했다.
‘클라이맥스’는 ‘진(眞)DJ 경쟁’이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누가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진짜 후계자인가를 놓고 한 달 내내 기싸움을 벌였다. 국민의당은 지난 4일 이희호 여사가 안철수 의원과 20여분간 비공개 회동을 하자 흥분했다. 당시 이 여사가 대접한 모과차에도 정치적 의미가 부여됐다. 그러자 더민주는 DJ의 3남 김홍걸 연세대 객원교수 입당으로 맞불을 놨다.
그러나 ‘DJ 가족’까지 등장시킨 드라마는 양측 모두에게 상처만 안긴 채 마무리됐다. 국민의당은 이 여사와의 비공개 대화 내용이 담긴 녹취록을 유출하는 대형 사고를 쳤고,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도 자신의 입으로 김 교수의 총선 불출마를 공식화했다. 한 동교동계 핵심 인사는 28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아들까지 끌어들인 더민주나 어르신과의 대화 내용을 언론에 유출한 국민의당 모두 뭐하자는 짓인지 모르겠다”며 싸잡아 양측을 비판했다.
양측이 상대 진영 수장에 대해 내뱉은 독설도 충분히 자극적이었다. 더민주는 국민의당 한상진 공동창당준비위원장이 ‘이승만 국부론’을 꺼내자 융단폭격을 했다. 더민주 정청래 의원은 지난 18일 “한 위원장이 진부한 뉴라이트 학자가 됐다”고 비꼬았다. 한 위원장 입장에서는 치욕적인 비난이었을 것이다. 국민의당 역시 김종인 더민주 선대위원장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참여 전력을 끊임없이 물고 늘어졌다. 국민의당은 김 위원장 공식 사과 다음날도 “진정성이 상당히 떨어진다”는 논평을 냈다.
숨어 있는 관전 포인트는 두 야당의 비판에 심각한 모순이 있다는 점이다. 한 위원장의 역사 인식을 비판한 더민주 문 전 대표는 지난해 11월 “1948년 건국 주장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없애는, 북한을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라고 했다. 하지만 문 전 대표가 영입한 김 위원장은 과거 언론 인터뷰 등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을 ‘건국대통령’이라 표현하고, 1948년을 건국 시점으로 잡기도 했다. 그럼에도 현재 당내에 이에 대한 비판은 찾아보기 어렵다. 국민의당도 마찬가지다. 안 의원이 김 위원장에게 자문했던 일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한때 자신이 정치적 조언을 구했던 인사가 상대 진영에 합류하자 과거 전력을 문제 삼아 비판하는 것에서 정당성을 발견하기 어렵다.
이른바 ‘막장드라마’ 시청자들은 “욕하면서도 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지금 야권의 ‘내로남불’ 드라마를 지켜보는 유권자들도 비슷한 심정일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 드라마가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불러낼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는 것은 가족애나 사회 정의를 다룬 스토리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apple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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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1-29 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