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나무는 없다. 파도에 밀리지 않는 배가 어디 있을까.
목회자도 인간이라 세상 유혹에 빠지거나 약해질 수 있다며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소리도 없지 않다. 그러나 목회를 완주한 두 원로목사가 후배 목사들에게 말을 건다.
“목사님, 한 눈 팔면 죽습니다.”
김해철 전 루터대 총장
언제나 내 탓
목회자도 사람인지라 탐욕 등 영적 나태에 빠질 수도… 세상과 타협 말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페달 밟아라
“나는 다시 태어나도 목사가 될 것입니다. 물론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할 생각이고요.”
올해 81세 김해철 전 루터대 총장의 목소리는 청춘이었다. ‘목회자가 빠지기 쉬운 함정’에 대해 여쭙고 싶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낸 지 1시간도 채 안 돼 응답이 왔다. 김 전 총장은 “중세에도 성직을 매매하고 면죄부를 판매하는 등 교회가 부패하고 타락해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았지만 루터는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부단히 회개하고 참회했다”고 말했다.
김 전 총장은 우선 ‘내 탓’을 강조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위기는 목회자가 자초한 것이라 했다. 목회자도 사람인지라 탐욕과 색욕, 명예욕과 권력욕, 영적인 나태에 빠질 수 있기에 초심을 잃지 말고 영적인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기를 부탁했다.
김 전 총장은 2014년 4년 임기 총장직에서 미련 없이 물러났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이사장직도 내려놨다. 한 번 더한다고 누가 뭐라고 할 사람도 없었지만 그는 훌훌 털었다. 아마도 그때 내려오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 수 없었을 거라고 했다. 진퇴 할 시기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 전 총장은 “목사는 천사마저 흠모하는 성스러운 직업인데 사사로운 유혹과 바꿀 수는 없다”면서 “한평생 아내만 바라보고 살았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아슬아슬했다고 말했다. 김 전 총장은 자전거를 예로 들었다. 앞을 향해 쉬지 않고 페달을 밟아야 하기 때문에 한눈을 팔거나 아래를 보고 가면 넘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29세에 목회자가 돼 52년 동안 부족하지만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페달을 밟았다고 털어놓았다.
김 전 총장은 또 히브리서 12장 2절을 들려줬다. “믿음의 주(主)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김 전 총장은 마지막 때가 가까우면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가장 먼저 하시는 일이 내 교회부터 심판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
박종순 충신교회 원로목사
내 눈 들보 먼저
온갖 유혹은 교회가 커지고 목회자가 잘 나갈 때 다가와… 하루하루 영적인 전쟁터에서 종지부를 찍는 마음으로
지난해 40년 목회 이야기 ‘완주자의 노래’(쿰란출판사)를 펴낸 박종순(76) 서울 충신교회 원로목사는 말을 아꼈다. 우리는 자칫하면 사람을 함부로 정죄하게 될 수 있고,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 눈의 티만 보는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 목사는 지난 세월 한순간도 방심하지 않고 쉬지 않고 달렸다. 그는 유혹의 손길은 언제, 누구에게나 뻗치는 것으로 예수님도 수없는 시험과 유혹을 받았다고 했다. 박 목사는 “시험과 유혹은 내 힘으로는 절대로 대적할 수 없는 것으로 인간의 얄팍한 생각으론 더욱 안 된다”면서 “성령님이 내 안에 거할 수 있도록 부단히 훈련하고 담금질을 해야 한다”고 했다.
박 목사는 자기를 통제하고 청지기 정신으로 재물에 대한 유혹을 물리칠 수 있도록 항상 깨어서 기도할 것을 주문했다. 일반적인 유혹과 덫은 위치가 낮거나 실패했을 때 오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커지고 목회자가 잘나갈 때 온다며 항상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날마다 자신을 복종시킨 것도 잊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내 안에 싸우고 있는 두 개의 자아 중 바르게 살려고 하는 자아가 이길 수 있도록 기도할 것을 당부했다.
박 목사는 또 빈틈을 경계했다. 연탄가스는 미세한 틈을 타고 올라오기 때문에 방심했다간 소중한 목숨을 앗아간다는 것이다. 또한 목회자는 그 누구보다도 냉정함을 유지하는 훈련이 필요하고 사사로운 정에 흔들리지 않도록 냉정함을 잃지 말기를 권면했다.
박 목사는 목회 완주의 지름길은 없다고 했다. 하루하루 영적인 전쟁터에서 종지부를 찍는 마음으로 고독하게 걸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목회는 외줄타기와 같다고도 했다. 대형교회 등 ‘대형’ 신드롬에 빠져 방심하는 순간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진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했다.
목회는 마라톤과 같다고 생각하는 박 목사는 결승점까지 무사히 달려 온전한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목회엔 왕도가 없고 승자와 패자도 없는 법이라 꼴찌로 들어오든, 1등으로 들어오든 큰 차이가 없습니다. 꼼수를 부려 1등을 한 뒤 넘어지면 무슨 소용이 있나요.”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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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1-29 19:36 수정 2016-01-29 20: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