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지난해 11월 파리 테러 이후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해 최근까지 2500회 이상의 체포 작전을 펼쳤다. 그런데 인권단체 프랑스인권연맹(LDH)은 작전 뒤 테러 혐의가 있어 법적 절차가 진행된 경우는 4건밖에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유엔인권이사회(UNHCR)조차 지난 19일 비상사태가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비난한 바 있다. 비슷한 상황이 영국과 벨기에 등 다른 유럽 나라와 미국에서도 전개되고 있다.
국제사회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트워치(HRW)가 27일(현지시간) ‘2016년 세계 인권 보고서’에서 “전 세계에서 ‘두려움’을 악용하는 정치(Politics of Fear)로 인권 침해가 횡행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특히 유럽에서는 테러 방지를 이유로 그동안 금기시됐던 프라이버시 침해가 빈번해졌다. 영장 없이 체포하거나 구금하는 일은 물론 가택수색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대화내용 및 전화 통화 내용을 들여다보는 일이 흔해졌고,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수사기관의 감시대상에 이름이 오른 이들도 급증하고 있다.
특히 2013년 미국 국가안보국(NS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이 정보 당국의 불법 도감청 사실을 폭로한 이후 주춤했던 ‘감시 체제’가 재구축되고 있다고 HRW는 지적했다. 특히 이민자들이나 젊은 무슬림 청년들에 대한 감시가 강화됐다. 아울러 전 세계적인 무슬림에 대한 여행 규제와 비자 규제도 인권침해의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지적했다.
두려움의 정치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각국 정부가 ‘무능’을 감추고 싶어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HRW는 꼬집었다. 자국 내 젊은이들에 대한 차별과 무관심, 높은 실업률 등이 테러를 낳은 측면이 있는데도 무슬림과 난민을 희생양 삼아 이들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줌으로써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는 것이다.
HRW의 케네스 로스 집행이사는 “9·11테러 이후 미 정부가 ‘테러 척결’을 명분으로 고문을 자행하고, 관타나모 수용소에 사람들을 불법 구금하던 상황이 지금 전 세계적으로 재연되고 있는 꼴”이라고 비난했다.
서방국가들의 ‘탄압’ 분위기에 편승해 전통적으로 인권이 열악한 나라들 역시 자국 내 인권운동가들을 옥죄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에서는 인터넷과 SNS에 대한 규제가 더욱 심해졌고, ‘안보’를 빌미로 시민사회 운동가들이 체포되거나 구금되는 경우가 늘었다. 유럽이 공포에 떠는 사이 시민사회의 감시망이 허술해진 에티오피아, 부룬디,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아프리카에서도 소리 소문 없이 인권 탄압이 증가하고 있다.
HRW는 이와 함께 글로벌 인권 이슈가 난민 문제에 집중되고, 또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우리와 그들(난민 또는 이방인)’이라는 이분법적인 시각 등으로 인해 전통적인 인권 사안인 여아들의 조혼, 여성에 대한 폭력, 아동노동, 시민사회 탄압 문제 등이 덩달아 소홀히 다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정부 무능 은폐하는 ‘공포’ 정치 美·유럽 휩쓴다
입력 2016-01-29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