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서 살아남은 나는 비정상이었다”… 홀로코스트 추모일 맞아 84세 女생존자 독일 의회서 증언

입력 2016-01-29 04:15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오른쪽부터), 슈타니슬라프 틸리히 작센주 총리(왼쪽 첫 번째)가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일인 27일(현지시간) 독일 연방 하원 본회의장에서 연설한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존자 루트 클뤼거(왼쪽 두 번째)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EPA연합뉴스

“1944년과 1945년 겨울은 제 인생에서 가장 추웠던 겨울이었습니다. 죽는 것이 정상이었고 살아남는 것은 비정상적인 것이었습니다.”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일인 27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의 연방하원 본회의장에서 루트 클뤼거(84·여)는 강제노동에 시달리던 당시의 생활을 떠올리며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1931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클뤼거는 11세가 되던 1942년 체코의 테레지엔슈타트에서 강제수용소 생활을 시작했다.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정권이 1938년 오스트리아를 강제병합한 탓이다.

클뤼거의 고난은 이후 3년간 폴란드 아우슈비츠를 거쳐 크리스티안슈타트 수용소까지 이어졌다. 그는 여성들이 당했던 성노역에 대해서도 증언했다. 클뤼거는 “수용소에 있던 여성들은 성병에 걸리거나 임신할 위험에 항시 노출돼 있었다”면서 “(성관계는) 길게는 20분이 허용되는데, 막사 밖에선 남자들이 줄지어 기다렸다”고 끔찍했던 장면을 회상했다.

클뤼거는 자신이 초청연설을 수락한 이유에 대해 그간 독일이 펼쳤던 난민 포용정책에 감명 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80년 전 세기적 최악의 범죄에 책임이 있는 독일이 오늘날 큰 마음으로 난민에 문을 열어 박수를 받고 있다”면서 “독일은 과거와 달라졌다”고 그는 말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1947년 미국으로 건너간 클뤼거는 작가로 활동 중이다.

이날 본회의장에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요아힘 가우크 대통령 등이 참석해 클뤼거의 연설을 경청했다.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일에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모여 초청연사의 연설을 경청하는 독일의 전통은 1996년 시작됐다. 매년 과거사를 직시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2013년 연단에 오른 작가 겸 저널리스트 잉게 도이취크론은 “우리는 그 어떠한 비명도 듣지 못했다. 어떠한 저항도 보지 못했다. 단지 그들이 생애 마지막 순간을 향해 순종적으로 걸어가는 것을 지켜봤을 뿐”이라며 희생자들의 마지막 순간을 전한 바 있다.

홀로코스트는 1941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때까지 나치 독일이 유대인 약 600만명을 학살한 사건을 일컫는다. 추모일은 아우슈비츠 수용소 해방일을 계기로 지정됐다. 이날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는 수십명의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촛불을 켜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해 통계에 따르면 18만9000명의 홀로코스트 생존자가 이스라엘에 살고 있으며, 그중 4만5000명가량이 추위와 가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이날 전했다. 생존자들의 평균 나이는 87세로 2025년에는 생존자가 더 이상 남아있기 힘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재 최고령 생존자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112세의 이스라엘인으로 파악됐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