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곳에 온 사람들마다 ‘다리가 이렇게 된 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해요. 하나님께서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한국에 있는 나를 보내 다리를 만들게 하셨다고요.”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북부의 센속주 크무언 지역에서 아내 김연희(48) 선교사와 2012년 ‘라파소망센터’를 설립, 장애인 의족 지원 사업을 펼치는 정현식(51) 선교사의 말이다. 지난 21일 정 선교사는 센터를 찾은 카우 피셋(24)씨의 오른쪽 허벅지를 만져보며 ‘의족이 몸에 잘 맞느냐’고 현지어로 물었다. 카우씨는 “많이 편해졌다”며 “요즘 집 근처 학교 식당 주방장으로 일하는데 한 달 뒤엔 약혼녀와 결혼할 계획”이라며 쑥스럽게 웃었다.
카우씨는 2013년 7월 취업을 위해 태국에 갔다 교통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잃었다. 정 선교사와 만난 건 2014년 5월 즈음. 부모와 친구들의 도움 없이는 화장실조차 갈 수 없는 상황에 비참함을 느끼던 상태였다. 정 선교사는 그를 만난 첫날부터 목발을 주며 스스로 걷고, 부모에게 물을 떠드리는 훈련을 시켰다.
“이 친구가 얼마나 젊고 잘생겼어요. 앞날이 창창한 친구들이 평소 일상생활에서 돕는 걸 훈련하지 않으면 부모에게 평생 의지하는 사람이 돼요. 도움 받는 거에 익숙해하지 말고 ‘돕는 자’로 살라고 의족을 전달하기 전 강하게 가르칩니다.”
카우씨는 “처음엔 선교사님이 무서웠지만 훈련하다보디 어느덧 혼자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게 돼 이제는 감사한 마음뿐”이라며 “내게 선교사님은 제2의 아버지다. 여기 오래 계셔서 나 같은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 선교사는 2001년 우즈베키스탄에서 의족과 처음 연을 맺었다. 전남 여수 여천교회 파송으로 우즈베키스탄에 온 부부는 무료로 의족을 만들어주는 비정부기구 ‘뉴 호프’의 협력 선교사로 6년간 활동했다. 정 선교사는 이곳에서 통역을 돕다 의족 만드는 법을 익혔다. 당시 우즈베키스탄에는 의족제작기관이 그곳 하나뿐이었다. 부부는 이곳에서 의족을 얻은 사람들의 희망에 찬 얼굴을 보며 큰 보람을 느꼈다. 협력 사역을 마치고 단독으로 의족 지원 사업을 펼치고자 미국 의족 공장에서 부품 사용법도 익혔다. 하지만 문제는 돈이었다. 단일 교회 후원으로는 고가의 의족 제작 장비와 부품을 갖추기 어려웠다.
“앞으로의 사역을 두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던 중 파송교회 지원으로 캄보디아를 돌아보게 됐어요. 남들은 몰라도 제 눈에는 다리 잃은 장애인들이 많이 보이더라고요. 의족 지원이 정말 이 땅에 필요한 사역이란 걸 절실히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캄보디아엔 1975∼79년 크메르루주 정권 당시 심겨진 지뢰로 다리를 잃은 사람이 아직도 발생 하고 있다. 태국 국경 지대의 오다 민체이주에서는 지뢰로 다리를 잃은 사람이 300명에 달한다. 최근엔 전국적인 건축 붐으로 청년들이 공단에 취업했다 산업재해를 당하거나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는 경우도 점차 늘고 있다. 어릴 적 못 등 금속을 잘못 밟아 생긴 작은 상처로 파상풍에 걸려 다리를 절단한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고가의 비용으로 의족을 제작하지 못하거나, 의족이 있더라도 사후 관리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의족 제작비는 평균 1500달러(한화 181만원) 정도이다.
2008년에 캄보디아에 도착해 2012년 센터를 세운 이들은 2014년 기아대책에 합류, 지난해부터 공식 지원을 받아 의족 제작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금까지 의족을 만들어 준 이들은 11명 정도. 현재는 센터에서 차로 9시간 걸리는 오다 민체이주 알롱벵 지역 지뢰 피해자 6명의 의족을 제작 중이다.
“각자의 의족에 맞는 부품을 찾느라, 혹은 환자가 말없이 오지 않는 경우도 있어 제작한 의족 수는 아직 많지 않아요. 가끔 고가의 의족을 완성했는데도 찾아가지 않는 이들을 만나면 속상하기도 해요. 좌절하지 않고 꼭 필요한 이들에게 새 다리를 선물할 수 있도록 더 힘내보려 합니다.”
의족 하나 제작하는 데 드는 기간은 보통 한 달 정도. 정 선교사는 이 기간 동안 수혜자가 그간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물으며 깊은 대화를 나눈다. 자신의 치부와 마음속 상처를 드러내기 어려워하던 이들도 이 기간엔 스스럼없이 마음을 연다. 이때 그는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에 대해 설명해준다.
“의족을 만드는 동안은 이들이 센터에서 숙식을 해결해요. 제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무엇을 위해 기도하느냐’고 물어요. ‘의족으로 당신이 독립하고 돕는 삶을 살도록 기도한다’고 하면 놀라더라고요. 보답은 전혀 기대하지 않아요. 그저 카우씨처럼 의족으로 새 삶을 살 수 있는 이들이 더 많이 오고, 이곳에서 장애를 앓는 다음세대가 희망을 찾기를 기대합니다.”
프놈펜=글·사진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선교사가 만든 새 다리, 새 삶 선물하다… 의족 지원 펼치는 정현식·김연희 캄보디아 선교사 부부
입력 2016-01-29 20:04 수정 2016-01-29 2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