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박정태] 검찰 특수단, 중수부와 다른 게 뭔가

입력 2016-01-28 17:29

거악 척결의 대명사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건 박근혜정부 출범 직후인 2013년 4월이다. 정치적 편향성 논란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몬 후폭풍이 워낙 컸다. “국민의 칼이 돼야 할 중앙수사부가 국민의 불신을 받아 더 이상 막중한 사정의 임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됐다는 뒤늦은 자각이….” 그날 현판 강하식에서 ‘중수부 역사에 대한 회고와 검찰의 각오’라는 글이 낭독된 뒤 중수부 현판은 검찰 역사관으로 향했다.

검찰은 다짐했다. 정치적 중립성 확보를 통해 국민이 원하는 검찰로 다시 태어나겠다고. 중수부를 대체할 특별수사 체계도 전면 개편했다. 서울중앙지검에 특수4부를 신설하는 등 조직을 확대한 것이다. 중수부 폐지에는 기구 존폐 이상의 커다란 상징적 의미가 있다. 검찰 개혁의 시발점이 돼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가 그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변한 게 없다. 정치적 사건을 권력자 입맛에 맞게 요리해오던 체질이 전혀 바뀌지 않았다.

개혁이 이뤄진 게 별로 없는데도 중수부가 3년도 되지 않아 사실상 부활했다. 전국 단위의 대형 비리를 수사할 부패범죄특별수사단(특수단)이 엊그제 서울고검 12층에 현판을 내걸고 공식 출범했다. 특수단은 김수남 검찰총장이 지휘한다. 베테랑 검사들도 직접 인선했다. 수사가 시작되면 전국 검찰청에서 대규모 병력을 추가 투입할 수 있다. 영락없는 중수부다. 검찰은 중수부 같은 정식 직제가 아니라 한시적 태스크포스라고 주장하지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특수단이 진정 중수부의 순기능만 되살리겠다는 취지라면 정치 편향성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살아 있는 권력의 비리에 눈을 감아선 안 된다. 죽은 권력을 부관참시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명박(MB)정부 고위직 인사들에 대한 무더기 계좌추적은 그래서 이뤄졌을 성 싶다. MB 측 인사들이 발끈할 것도 없다. MB정부 때의 검찰도 노무현정부 핵심 인사들의 계좌를 몰래 들여다본 적이 있으니까. 이게 인사권을 틀어쥔 권력자에 충성하는 검찰의 속성이다.

물론 특수단은 여론을 의식해 첫 작품으로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대형 부정부패 사건을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고비마다 권력의 호위무사 역할을 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정략적 사정을 위한 기획 수사에 내몰릴 수도 있다. 권부의 심기를 거슬린 검찰 간부에 대한 보복인사가 거듭 자행되고 청와대 파견 검사들이 검찰로 돌아와 요직을 차지하는 판국에 어느 누가 ‘광야의 소리’를 내겠는가.

국민적 불신이 여전히 크다. 청와대나 권력 실세들이 연루된 의혹에 대해서는 감히 수사할 엄두를 내지 못한 검찰의 자업자득이다. 최근 중소기업진흥공단 채용 비리 사건의 ‘최경환 의혹’에 대해서도 얼렁뚱땅 넘어갔다. 최경환 전 부총리 외에 국회의원과 전·현직 관료들이 취업 청탁자로 잇달아 등장하는데도 애써 외면하고 있다. 고위층 청탁이 어디 이곳에만 있었으랴. 중대한 부정부패 못지않은 구조적·고질적 부조리라고 볼 수밖에 없다.

중립성과 공정성 확보는 결국 의지의 문제다. 총장 직속 특수단이 의지가 있다면 말만 앞세우지 말고 ‘이 정권의 막강한 실력자’인 최경환 의혹부터 재수사해 보라. 권력형 비리가 포착되면 주저 없이 수사의 칼날을 들이밀어 보라. 국민이 원하는 검찰은 그런 것이다. 그런데 만에 하나, 수사력 약화로 ‘하명 수사’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대신에 청와대를 향해 “제가 있사옵니다”라며 정권 보위에 나설 요량이라면 특수단 간판도 역사관으로 보내야 마땅할 게다. 향후 특수단의 존폐는 전적으로 김 총장의 정치적 중립에 달려 있다.

박정태 논설위원 jt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