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고사 세대인 탓인지 대학입시 면접을 위한 학원이 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놀랐던 기억이 있다. 면접 강의 수강료가 엄청난 고액이라는 사실에 혀를 차기도 했다. 기업 입사를 준비하는 구직자에게 맞춤 면접학원이 필수 코스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의아했다. 과문한 탓인지 20년 전 신문사 입사를 고민할 때 면접시험을 별도로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면접 전날 회사의 사시(社是)를 살폈고, 일반적인 예상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본 게 전부였다. 돌이켜 보면 운이 좋았다 싶다.
면접 준비가 중요해진 상황을 이제야 깨달은 것인지 요즘 행정고시나 공무원시험 대비 학원들이 공직가치 면접을 위한 강좌와 설명회 등을 열고 있다는 기사를 접하고서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면접이란 절차가 평소 생각이나 태도를 드러내는 자리가 아니라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못하면 당락이 바뀌는 과정이라는 현실을 수긍한 까닭일 게다. 시시각각 소신이 달라져야 하는 염량세태의 생존법을 뭐라 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하는 자괴이기도 하다.
면접 얘기를 늘어놓은 것은 정부가 26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한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을 떠올려서다. 이번 개정안에서는 공직가치 실현 의무 항목이 새로 포함됐는데 애국심과 책임성, 청렴성 등 세 가지가 공직가치로 규정됐다.
세 가지 모두가 공직자에게 중요한 요소인 것은 분명해 보이는데 이곳저곳에서 벌써부터 반발하는 소리가 들린다. 애국심의 측정·평가 기준이 모호해 이를 통해 정권 혹은 특정 정책에 대한 지지 여부를 가늠하는 장치로 악용될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다.
이런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따지고 보면 정부가 자초한 탓이다. 지난해 10월 진행된 5급 공채의 공직가치관 평가 면접은 응시생 10명 중 3명 정도를 탈락시키는 중요한 과정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나 ‘원전문제 갈등세력’ 등 찬반양론이 첨예한 정부 정책에 대한 질문이 주어졌다. 현 정부 정책에 찬성 의견을 얘기하지 않으면 탈락됐을 것이라는 의심을 스스로 만든 꼴이다.
지난해 4월 인사혁신처가 5급 공채 면접시험에서 공직가치를 핵심적으로 평가하도록 시험 방식을 변경했고 이제 법안까지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국회 논의 과정이 남아 있지만 정부는 공직가치 평가의 기준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좀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 제발 지난해 10월처럼 어설픈 질문으로 애국심 등 정부가 스스로 만든 공직가치의 격을 떨어뜨리지 않기 바란다.
이왕 꺼냈으니 면접 얘기 하나만 더 하자. 지금 한창 새누리당 사무처당직자 공채가 진행 중인데 일정상 다음 달 2일이 면접전형일이다. 면접에서 요즘 새누리당 내 가장 뜨거운 이슈인 ‘상향식 공천제도’ 질문이 나오면 지원자는 어떻게 답해야 할까. 비박계인 김무성 대표가 상향식 공천을 앞장서 이끌고 있으니 지지 의사를 밝히는 게 도움이 될까.
다년간 정당과 정부부처를 두루 출입해본 경험으로 조언하자면 찬반양론이 첨예한 질문이 던져질 경우 소신이 있더라도 똑 부러지게 얘기하지 않는 게 낫다. “상향식 공천 절대 안 된다”는 소신을 갖고 있는 대표가 언제 등장할지 알 수 없는 일 아닌가.
정당의 줄 세우기는 공무원 조직의 그것과 비교하기 어렵다. 공무원이야 정권의 압력 핑계라도 댈 수 있지만 정당 내에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집권당 사무처당직자 면접에서도 답변을 따져봐야 하는 세상이니 많은 돈을 들여 면접 답변을 준비하고 연구하는 세태가 이상할 것도 없지 싶다. 정승훈 온라인뉴스부 차장 shjung@kmib.co.kr
[세상만사-정승훈] 돈으로 면접 정답 구하는 세상
입력 2016-01-28 1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