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은 예술이 아니다, 삶의 혁명이다… 유니버설디자인 속으로

입력 2016-01-30 04:00 수정 2016-01-31 20:02



유니버설디자인이란 말은 미국의 건축가이자 유니버설디자인센터 소장이었던 로널드 메이스에 의해 1970년 처음 사용됐다. 장애인을 위한 특별한 디자인보다는 장애인을 포함해 모든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의 필요성을 인식해 제창한 개념이다.

유니버설디자인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구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때문에 공평한 사용, 사용상의 융통성, 간단하고 직관적인 사용, 정보 이용의 용이, 오류에 대한 포용력, 적은 물리적 노력, 접근과 사용을 위한 충분한 공간 등 7가지 원칙에 기반을 둔다.

◇생활 속으로 들어온 유니버설디자인=일반인들에게 유니버설디자인은 생소한 개념이지만 일상에 적용된 사례들은 꽤 있다. 화장실이나 주방의 수도꼭지가 그렇다. 과거 수도꼭지는 냉수와 온수 꼭지가 별도로 있고 원형 손잡이를 돌려서 사용했다. 손아귀 힘이 약한 어린이나 노약자들에겐 불편했다. 그러나 이제는 손잡이가 하나로 합쳐졌고 레버를 위 아래로 올리거나 내려 물을 틀고 잠그는 디자인이 대부분이다. 좌우로 살짝 돌리면 온수와 냉수가 나오도록 설계돼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다. 수도꼭지는 이제 손을 갖다대면 자동으로 물이 쏟아지는 제품으로까지 진화했다.

문을 열기 위해 손으로 잡고 돌려야 했던 문고리도 레버형이나 버튼형으로 바뀌었다. 훨씬 적은 힘으로 문을 여닫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비상구나 화장실 안내표시 등에 사용되는 픽토그램도 유니버설디자인이다. 사물, 시설, 형태, 개념 등을 일반인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상징적인 그림으로 나타낸 픽토그램은 지식의 유무나 사용 언어에 관계없이 이해하기 쉽다. 특정한 정보를 간단명료한 이미지로 표현해 외국인, 노인, 글을 모르는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유니버설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아파트나 공공건축물 앞에 설치된 경사로는 노약자나 유모차를 끄는 부모들에게 편리한 이동로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의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됐으나 이제는 보편적인 이동 편의시설로 당연시된다.

◇유니버설디자인, 지방자치단체가 주도=유니버설디자인은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기관들이 주도해 왔다. 경기도 화성시에 2010년 문을 연 ‘나래울 화성시복합복지타운’은 유니버설디자인이 적용된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종합사회복지관, 노인복지관, 장애인복지관이 한데 어우러진 지하 2층, 지상 4층 규모의 이 건물은 경기도 최초로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BF) 1급 인증을 받았다. 나래울은 건물 전체에 단차가 없어 외부에서 건물까지 휠체어로도 이동할 수 있다. 야외공연장엔 계단과 경사로가 함께 설치돼 있어 장애인들도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건물의 모든 출입문은 턱을 없애고 유효 폭을 1m 이상 확보해 휠체어 이용이 가능하다. 복도도 폭을 2.5m 이상 확보하고 벽면에 2단 손잡이를 설치해 장애인이나 노약자들이 부딪칠 걱정 없이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다.

대전시는 유니버설디자인거리를 조성하고 있다. 중구 태평로(태평오거리∼계백로)와 유성구 대학로(충남대오거리∼유성네거리)에 오는 6월 말까지 완공할 예정이다. 태평로는 1030m, 대학로는 970m 구간으로 고원식 횡단보도 등을 설치해 이동 편의를 높이고 가로변에 노약자들이 쉴 수 있는 벤치 등 편의시설을 설치한다.

서울 광화문 인근 대한민국역사박물관도 유니버설디자인이 적용된 건물이다. 박물관 출입구가 인도에서 평지로 연결돼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안내데스크는 휠체어 이용자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높이를 낮추고 무릎 부위가 데스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디자인됐다. 화장실은 변기 높이를 달리했고 변기에 손잡이를 설치해 노약자들이 어려움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은 주출입구에 경사로가 설치돼 있고 엘리베이터, 수유실 등이 마련돼 있다. 수화통역 전시 해설과 영상해설기, 음성해설기 대여 등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민간 시설·제품에 적용된 유니버설디자인=디자인 기업인 디자인이즈는 잡기 쉽고 눈금을 읽기 편한 유니버설디자인 자 픽큘러를 선보였다. 기존 눈금자들은 바닥에 딱 붙어 사용 후 집어 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픽큘러는 자의 형태를 변형해 이런 문제점을 해결했다. 뒷부분 일부가 바닥면에서 떨어져 있는 형태여서 쉽게 집어 올릴 수 있다. 경사가 있는 뒷부분을 누르면 앞부분이 들어올려져 역시 쉽게 자를 잡을 수 있다. 눈금 숫자 크기를 키우고 가로, 세로 두 방향으로 표기해 어느 쪽에서도 쉽게 읽을 수 있다.

이호창 디자인이즈 대표는 “유니버설디자인은 대단한 개발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작은 불편들을 새로운 아이디어를 적용해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파트 단지에 유니버설디자인이 적용된 사례도 늘고 있다. 서울 마포구 아현 래미안 푸르지오는 지상은 차 없는 단지로 조성돼 있다. 휠체어, 유모차 이용이 편리하도록 경사형 엘리베이터도 일반 아파트 단지 중 처음으로 설치했다. 노약자와 초보운전자들도 손쉽게 주차할 수 있는 확장형 주차공간이 전체 주차장의 30%가량을 차지한다.

용인 상현힐스테이트는 응급호출 시스템, 신발장 의자, 미끄럼 방지 바닥 등 노인은 물론 성인들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아이템을 다수 도입했다.

신체에 맞게 높이를 조절할 수 있는 책상은 흔히 볼 수 있는 유니버설디자인 제품이다. ㈜예림컴퍼니는 사용자가 테이블이나 책상의 높이를 스위치로 조절하면서 쓸 수 있는 자동 높이조절 책상을 내놓았다. 컴퓨터책상의 모니터를 개별 스위치나 리모컨 등으로 승하강시켜 사용하는 전자동 책상도 출시했다.

㈜윤택이엔지는 수평 이동과 높이 조정이 가능한 욕실 제품을 덴마크 프레살릿케어사로부터 수입 판매하고 있다. 전동식 세면대는 높낮이를 30㎝ 범위에서 조절할 수 있다. 샤워의자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나 장애인들이 간병인 등의 도움을 받아 샤워하기에 편리한 제품이다. 높이 조절과 수평 이동이 가능하고 사용하지 않을 땐 접어 보관할 수 있다. 이 제품들은 아동재활병원 등을 중심으로 판매되고 있다.

바이오웰니스는 환자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위한 개폐형 욕조(워크인 바스텁)를 선보였다. 측면을 여닫을 수 있어 거동이 불편한 사람도 이용하기 편하다.

◇유니버설디자인 공모전=비영리 민간단체인 한국장애인인권포럼은 2006년부터 매년 유니버설디자인 공모전을 연다. 보건복지부, 서울시, 한국디자인진흥원 등이 후원하는 공모전에는 매년 시각, 제품, 환경 및 실내 등 3개 부문에서 500∼600여점이 접수된다.

지난달 시상식을 가진 10회 공모전에는 582점이 출품돼 ‘시각장애 아동을 위한 놀이터’가 대상을, 누구나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지하철 개찰구 ‘스카이 게이트’와 시각장애인이 촉각으로 방향을 인식할 수 있게 디자인된 신용카드 등이 최우수상을 받았다.

양원태 한국장애인인권포럼 대표는 “유니버설디자인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별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의 편의성을 높이는 디자인”이라고 말했다.

라동철 선임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