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섯 딸 가운데 넷째 딸로 태어났다. 맏이도 아니고 막내도 아니고, 하나뿐인 아들도 아닌 그냥 넷째 딸이다.
어렸을 때 누구나 한 번쯤 해보는 상상이 있다. 출생의 비밀. 동화책에도 나오지만 어른들이 보는 텔레비전 드라마에도 나온다. 원래 고귀한 집안의 딸로 태어났는데, 운명의 장난으로 어딘가에 버려졌고, 그래서 지극히 평범한 현재 부모 밑에서 자라게 되었다는 상상. 그런 상상을 나도 시도는 해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상상이라 해도 말이 되지 않았다. 딸이 이미 다섯이나 있는데, 설마 딸을 하나 더 입양했을까? 대단한 진짜 부모가 따로 있으리라는 상상은 그 지점에서 저절로 셔터가 내려지기 마련이다.
감각도 취향도 없어서 단순하고 실용적인 물건들을 선호한다고 했더니 친구가 반박을 한다. 아름답다는 판단은 개인의 취향뿐 아니라 사회적 합의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에 ‘명품’들 대부분은 누가 봐도 좋단다. 심미안이 문제가 아니라 능력이 안 돼서 미리 관심을 차단했을 수 있다는 것.
내 마음을 남이 해석해주는 게 유쾌하지는 않지만, 그럴 듯한 설명 같기도 하다.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려면 어울리는 옷이나 구두가 있어야 하고, 그런 옷차림으로 갈 만한 곳도 있어야 할 테니, 내 깜냥으로 그 모두를 감당하기 힘들어 일찌감치 외면했을 수 있다.
명품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하면서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명품 비슷한 명품들을 굳이 피하려고 애썼다. 진짜를 흉내 낸 가짜를 갖는 건 자존심 상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런 마음조차 진품·명품이라는 틀에 갇힌 구차함일지도 모른다.
이 나이가 되도록 대단한 진짜 부모가 따로 있기를 바라는 욕망을 숨기고 있었나? 요즘은 명품 비슷하게 생긴 짝퉁 가방 하나쯤 사서 들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별해지고 싶은, 특별하지 않은 나의 욕망을 어깨에 힘 빼고 드러내는 재미가 있을 듯하다.
부희령(소설가)
[살며 사랑하며-부희령] 출생의 비밀
입력 2016-01-28 17: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