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없이 사는 사람이 있을까. 삼성 이건희 회장도, MS 창업자 빌 게이츠도 자신들이 운영하는 회사를 위해 채권을 발행해 기업을 도모한다. 천하의 갑부도 백화점에서 카드를 긁는 순간 빚을 진다. 돈 빌리기보다 갚는 게 더 어렵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하루아침에 빚더미에 올라앉을 수 있다는 게 신용사회의 이면이다. 한동안 저금리로 돈을 잘 빌리던 상황에서 이젠 금리 인상 우려로 빚을 제대로 갚는 방안을 우리 정부뿐 아니라 전 세계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금융권에서 돈을 빌린 사람의 신용을 평가·조회하고 빚 독촉(추심)을 하는 신용정보회사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서울 여의도 한국신용정보협회를 지난 25일 찾아 김희태 회장을 만나봤다.
-주로 돈을 빌려주는 입장에서 그 돈을 관리하는 입장으로 바뀌셨는데,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신용정보협회는 29개 회원사가 있다. 그중 6개는 신용조회회사고 나머지는 신용정보회사(추심업체)다. 지난해 9월 회장으로 취임하고 나서 보니 은행은 온실에서 핀 꽃이고, 보험회사는 야생화더라. 반면 신용정보업계는 자갈밭에 있는, 척박한 땅에 핀 야생화로 느껴졌다. 부실채권을 추심해서 돈을 받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하고 있다. 신용정보조회회사는 자료를 모아서 제공해야 하니 책임감이 막중하다. 한마디로 설거지를 해야 하는데 밥을 짓는 것(돈을 빌려주는 것)보다 몇 배 어렵다. 이런 자갈밭을 평평한 밭 정도로는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협회의 위상을 높이고 먹을거리를 창출해야 한다. 신용정보업은 신용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 신용정보업 위상이 높아져야 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구체적인 방안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부실채권을 매입해 매각하는 방안이다. 대부업체는 그걸 하고 있다. 대부업체는 자기들이 ‘돈놀이’를 하거니와 부실채권을 매입·매각하고 추심도 한다. 우리는 추심만 할 수 있고 매입·매각은 금지돼 있다. 우리도 부실채권 매입·매각을 할 수 있도록 금융위원회에 요청하고 있으나 진전이 없다. 신용정보회사가 금융위 허가를 받는 것과 달리 대부업체는 시·도에 등록만 하면 영업할 수 있다. 이렇게 관리를 철저히 받는 신용정보업계가 대부업체와 달리 부실채권 매입·매각을 하지 못하는 건 형평성의 문제다. 둘째, 국가 채권, 국세 지방세 체납을 우리가 대신하면 잘할 수 있다. 국가채권이 8조원인가 우리가 못 받고 있는 게 있다. 우리가 전문가니 우리에게 주면 제대로 걷겠다는 것이다. 신용정보회사에 맡기면 국세 지방세 세수 늘고 조세 형평에도 맞다. 국세청의 우수한 인력을 허비하지 말고 허드렛일은 우리에게 맡겨달라는 것이다.”
-삼성카드가 최근 채권추심 업무를 자회사로 이관하려다 난관에 봉착했다. 이처럼 대기업 계열사인 카드·캐피털 업계에서도 신용정보 업무에 진출하려는 추세가 강해 보인다.
“삼성카드 이전에도 현대, 롯데, KT 등이 추진했다. 카드 연체 3개월 미만은 카드사가 자체적으로 추심한다. 3개월 넘는 것은 우리한테 준다. 삼성 얘기는 3개월 미만 연체 건을 회사를 따로 만들어 하겠다는 거다. 허용해 주면 3개월 미만이라는 조건이 1년만 지나면 무너질 것이다. 삼성이 들어오고 다른 대기업들이 가세하면 결과는 뻔하다. 여기 중소업체에 근무하는 추심인이 1만8000명인데 기업 망하고 생태계가 파괴된다. 추심업 시장이 어지러워지면 채무자들은 빚 독촉에 더 시달릴 것이다. 전문성을 가진 추심인들이 하기 때문에 그나마 지금 명맥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신용정보업은 추심이라는 사후업무와 조기에 신용이상 징후를 감지할 수 있는 업무로 나눌 수 있는데, 협회 차원에서 사전감지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복안이 있는지.
“신용조회회사는 채무불이행정보, 금융질서문란정보, 기타 신용상의 변동사항 발생 등을 모니터링하고 고객에게 안내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달 KCB가 통계청과 업무협력 MOU를 체결했다. 빅데이터의 공익적 가치 창출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공동으로 가계부채를 연구하기로 했다. 수년 전 3개 카드회사를 대상으로 한 KCB 카드정보유출 사고가 있었지만, 신용정보업계에 문제가 있거나 망이 뚫린 것이 아니라 개인이 유출한 범죄였다.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을 틀어막거나 근본적으로 제재를 하고 규제를 가하면 오히려 업계 발전이 저해되지 않나 생각한다. 예를 들어 개인정보 외에 기업정보는 오픈될 수 있는 게 많다. 기업정보가 많이 공개돼야 신용조회 회사들이 자료를 제대로 넣을 수 있다. 하지만 매출액 등 표면적인 정보 외에 사장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이런 것들도 입력돼 신용평가가 나와야 하는데 막혀 있다. 사전감지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신용정보회사들이 기업정보를 다 얻을 수 있게 풀어줘야 한다. 이는 신용정보업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경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그럴수록 기업 입장에서는 모뉴엘 같은 분식회계 사건이 속출할 수 있고 개인들은 신용불량 사태가 폭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모뉴엘 관련, 우리은행의 경우 한 직원이 이상 징후를 발견해 막대한 손실을 피할 수 있었는데,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당한 것 같다.
“신용정보회사가 기업의 재무제표를 통해 자료를 만든다. 금융사들이 그걸 제대로만 활용한다면 조기에 징후를 잘 발견할 수 있다. 우리은행의 경우 금천 영업본부장이 현장에 갔는데 거래내역을 보니 처음에 듣던 것과 달랐다고 하더라. 숫자가 확 올라가고 빌 게이츠가 모뉴엘을 언급했다는 것도 미국 현지법인에 알아보니 사실이 아니었다. 모뉴엘이 미국에서 전시할 때 게이츠가 그 근처를 지나가며 얘기하다가 모뉴엘이 잡혔는데 그걸 모 신문에서 기사화해 소문이 그렇게 났다고 한다. 매출전표 숫자도 기업분석팀 의뢰 결과 이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완제품이 15달러인데 부품이 25달러면 말이 안 되는 거 아니냐. 그때부터 파고들어 대출회수에 들어가 우리은행은 안 물린 거다. 사명감과 의지를 가지고 들여다보면 충분히 징후를 발견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금융회사들이 신용조회회사의 조기경보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 사안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 경제 활성화법 통과를 얘기하면서 “한국경제가 위기다”라고 하는데 무디스 등에서는 국가신용등급을 올렸다. 어떻게 보나.
“제 소견으로 무디스는 실질적인 내부 경제는 보지 않고 거시지표, 외환보유고 등 지급능력 이런 것만 봐서 그럴 것이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보다 실제 경제는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피부로 느끼고 있지 않나. 자영업자 1년 이상 영업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 현실 경제는 너무나 어려운 것 같다.”
-금융 당국이 불법추심 행위에 대해 지속적으로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차제 근절 방안은 있는지.
“신용정보업계는 불법 추심을 안 하는 게 원칙이다. 자율규제위원회가 있다. 변호사 교수 등 외부인 3명, 내부인 6명 등 9명으로 구성돼 있다. 수시로 안건을 올려서 잘못된 부분을 자율적으로 고친다. 불법 현수막 설치 이런 것도 못하게 하고 지자체에 철거도 요청한다. 금융소비자보호협회도 있다. 주요 회사 부장급, 실무자들이 협의해서 잘못된 것을 고치고 있다. 또 하나 채권추심 가이드라인 책자도 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절대 불법 추심을 할 수 없고 했을 경우 체계적으로 벌금도 물리는 등 자체 처벌한다. 불법 대부업자, 영세 대부업자, 사채업자 등이 불법 추심을 하는데 도매금으로 취급당하고 있다. 이런 요인들로 인해 신용정보업계 위상이 내려가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미지 제고와 위상 강화를 위해 회원사들과 사회공헌 활동도 지속적으로 할 생각이다. 협회에 와서 보니 지금까지 사회공헌 활동을 한 차례도 안 했더라. 지난 연말 탈북자 자녀들이 다니는 기숙학교와 쪽방촌에서 봉사활동을 한 것이 출발점이다.”
▶▶김희태 회장은 1950년생으로 중앙대 법대를 졸업했다. 77년 당시 한일은행(현 우리은행)에 입행한 뒤 업무지원본부·경영지원본부 집행부행장, 중국 현지법인장 등을 역임했다. 은행에서 우리아비바생명보험(현 DGB생명)으로 자리를 옮겨 2011년부터 2년여간 회사를 이끌었다. 지난해 9월엔 민간 출신으로는 처음 신용정보협회장으로 선임됐다.
이동훈 경제부장 dhlee@kmib.co.kr
[데스크 직격 인터뷰-신용정보협회 김희태 회장] “채권 추심 시장 어지러워지면 빚독촉에 더 시달릴 것”
입력 2016-01-28 2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