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압박에 꿈쩍않는 中 속앓는 韓… 북핵·사드 문제 등 한국외교 속수무책

입력 2016-01-28 04:03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왼쪽)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27일 베이징 외교부 건물에서 회담하기에 앞서 인사를 나눈 뒤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두 장관은 북한의 4차 핵실험과 관련한 제재안을 놓고 현격한 이견을 드러내면서 구체적 대북제재 조치를 마련하는 데 실패했다. AFP연합뉴스

대중(對中) 외교 성과를 바탕으로 ‘코리안 포뮬러’(Korean Formula·한국방식) 북핵 해법 도출에 나섰던 우리 정부가 외톨이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북한의 기습적인 핵실험으로 공들였던 외교 로드맵이 폐기 위기에 놓인 채 미·중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어서다.

미·중은 27일 외무장관회담에서 유엔 차원의 강력한 대북제재 필요성엔 합의했지만 구체적인 제재 수위에는 현격한 의견차를 드러냈다. 중국이 고강도 대북제재에 분명하게 반대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사드 배치 검토까지 앞세워 중국을 압박했던 우리 정부 역시 전략 수정 요구에 직면함은 물론 공들였던 한·중 관계도 부메랑을 맞게 될 전망이다.

존 케리 미국 국무부 장관은 베이징에서 열린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과의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미·중은 강력한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 필요성에 합의했다. 다만 구체적인 조치는 합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으로부터 동맹을 보호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미국은 (북한에 대한) 중국의 특별한 능력을 믿는다”며 중국 역할을 촉구했다.

미국은 대북제재 결의안에 대북 원유수출 및 북한 물품 수입금지 등 북·중 교역도 포함돼야 한다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왕이 부장은 “북핵 문제는 대화로 해결해야 하며 제재가 목적이 돼선 안 된다”며 “북핵 문제는 대화와 협상으로 해결돼야 한다”고 반박했다.

중국의 냉담한 태도는 회담 전부터 어느 정도 예고돼 있었다. 중국은 박근혜 대통령이 북핵 5자회담을 제안하고 한민구 국방부 장관까지 나서서 사드 배치 필요성을 제기하자 노골적인 불쾌감을 드러내 왔다. 중국 관영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는 이날 사설에서 “중국의 대북제재 문제에서 한국은 너무 ‘제멋대로’(任性) 굴어선 안 된다. 만약 사드 배치에 나선다면 양국 간 신뢰가 엄중한 손상을 입고, 한국은 대가를 치를 준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중국 외교부 역시 지난 13일 박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에서 사드 배치를 언급하자 “한 국가가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려면 반드시 다른 국가의 안전도 고려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의 반감은 1차적으로는 우리 정부가 대상이지만 실제로는 한국 배후의 미국을 겨냥한 것이란 해석이 많다. 북핵 문제는 한반도 차원을 넘어선 세계 양강(G2)인 미·중 간 국제질서의 문제인 탓이다. 미국은 북한의 4차 핵실험을 계기로 그동안 사사건건 부딪혔던 중국을 강도 높게 압박해 왔다.

지난해 9월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해 베이징 천안문 망루에서 ‘라오펑유’(老朋友·오랜 친구)임을 천명했던 우리 정부 역시 불과 4개월 만에 미국과 발맞춰 중국을 압박하는 처지에 처하고 말았다. 그리고 중국이 이날 고강도 대북제재 거부 의사를 공식화하면서 ‘중국 경사론’까지 감수하며 구축했던 대중 외교노선의 진정성마저 의심받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강준구 기자,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eye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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