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를 아시나요? 전국 곳곳의 유치원에서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들을 말합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국학진흥원이 2009년부터 할머니들을 선발해 교육을 거쳐 현장에 보내는 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에게 전래동화를 통해 삶의 지혜와 생활예절을 가르치는 무릎교육인 셈이죠.
할머니=“여러분, 밤하늘을 본 적이 있지요?”
아이들=“네.”
할머니=“밤하늘에서 무엇을 보았나요?”
아이들=“별과 달이요.”
할머니=“별과 달을 보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나요?”
아이들=“예뻐요. 좋아요.”
할머니=“옛날에는 오늘날과 같은 정확한 시계가 없었어요.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시간을 알았는지 궁금하지요?”
아이들=“네. 가르쳐 주세요.”
할머니=“시간을 알려주는 시계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사람이 있어요. 오늘 할머니가 들려줄 이야기는 별을 좋아한 소년 과학자 장영실 이야기에요.”
제7기 이야기할머니의 상반기 2차 심화교육이 진행된 지난 25·26일 경북 안동시 도산면 퇴계로 국학진흥원을 찾았습니다. 1박2일 일정으로 열린 심화교육에는 200여명의 이야기할머니가 참가했습니다. 대부분 2, 3년간 활동한 경력자들이죠. 4월 유치원 파견을 앞둔 심화교육은 3월 10·11일까지 모두 11차례 진행됩니다.
“옛날 옛날에 아주 옛날에 갑돌이와 갑순이가 살았는데∼”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옛날이야기를 떠올리시면 오산입니다. ‘숲 속의 네 친구’(협동) ‘별을 좋아한 소년 과학자 장영실’(노력) ‘박새의 노래’(약속) ‘글공부를 포기하지 않은 허초희’(용기) ‘가난한 사람을 도운 개성 최 부자’(나눔) 등 주제별로 구성된 26가지 이야기를 재미있고 구수하게 들려줍니다.
할머니들은 이야기를 철저히 외워야 합니다. 잠시라도 머뭇거리거나 더듬으면 아이들이 금방 다른 곳을 보거나 딴전을 피우니까요. 발음도 정확해야 합니다. ‘숲 속의 네 친구’를 잘못 발음하면 ‘숲 속의 내 친구’로 들을 수도 있지요. 표정과 태도도 항상 즐겁고 친절해야 아이들이 쉽게 다가오겠죠.
이야기할머니는 2009년 제1기 30명으로 출발했답니다. 해마다 인원이 늘어나 2014년 750명, 지난해에는 700명이 활동했습니다. 국비 지원도 첫해 2억3000만원에서 지난해 88억1500만원으로 크게 늘어났지요.
만 55세 이상부터 70세 이하의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기존의 이야기할머니들은 72시간 심화교육을 받고 활동하고, 2월 29일까지 지원서를 받는 할머니들은 1년간 교육을 거쳐 내년부터 활동하게 됩니다. 2014년에는 평균 6.7대 1, 지난해에는 5.7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답니다.
옛날이야기 수업은 1·2학기 총 30주를 실시합니다. 한번에 20분간씩 하루에 두세 개의 유치원에서 활동합니다. 지난해에는 전국 5708개 유치원에서 37만여 명의 아이들이 이야기할머니를 만났습니다. 2009년에는 자원봉사로 활동했으나 지금은 한 시간당 3만원이 지원됩니다. 돈보다는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기억력을 되살리고 동심으로 돌아가 젊게 사는 힐링을 선물 받는 즐거움이 있는 거죠.
어떤 할머니는 세 번 지원했다가 다 떨어진 후 엉엉 울면서 하소연하기도 하고 어떤 할머니는 활동을 그만둔 후 무료함에 병이 나서 자식들이 “제발 다시 활동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는군요. 이력도 다양합니다. 평범한 가정주부도 있고 고위 공무원이나 초등학교 교장 출신도 있습니다.
이야기할머니들의 열정은 나이를 무색케 합니다. 앉으나 서나 이야기 대본을 외우고 거울을 보면서 표정 짓기를 해본답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불러주는 노래 “하나 둘 셋 넷! 이야기 시작∼ 우리 모두 신나게 잘 들어보아요. 귀는 쫑긋 눈은 반짝 준비됐나요∼ 하나 둘 셋 넷! 출발합니다. 빵빵”을 수시로 연습하지요.
처음에 이야기를 꺼낼 때 아이들을 집중시키는 게 중요합니다. 서론이 너무 길거나 설명하듯이 천천히 하면 아이들이 “그러니까, 이야기는 언제 해주실 거예요?”라는 반응을 보이거든요. 단정한 옷차림에 액세서리는 착용이 금지됩니다. 삽화 자료는 이야기별로 2장씩 제공되고 마술이나 인형극 등은 삼가야 합니다.
1박2일의 심화교육을 받은 이야기할머니들은 자신감에 넘쳤습니다. 강원도 강릉에서 3년째 활동하는 권순주(62·5기)씨는 어서 빨리 유치원이 개학하기를 기다린다고 합니다. “나이 예순에 접어들면서 의욕이 없었는데 이야기할머니를 하다 보니 에너지가 솟고 아이들처럼 순수해지는 것 같아 즐겁고 행복해요.”
서울 관악지역에서 4년째 활동하는 김형순(70·4기)씨는 옛날이야기를 통해 역사 공부도 하고 아이들의 사랑도 확인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합니다. “집안에 할머니가 있는 아이는 친근하게 다가오는데 그렇지 않은 아이는 낯설어 해요. 꼭 안아주고 예쁘다고 하면 무릎에 앉아 재롱을 부려요. 아이들이 전부 친손자 같아요.”
대전에서 5년째 활동하는 한경자(70·3기)씨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교감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합니다. “잘하는 아이에겐 칭찬을 해주고 다소 위축돼 있는 아이에겐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 신경을 많이 써요.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 아이들이 공주 그림을 그려 선물할 땐 감동과 뿌듯함을 느껴요.”
어릴 적 할머니의 무릎은 이야기 타래였습니다. 착한 심청이, 심술 놀부, 어흥 호랑이, 꾀돌이 여우…. 아이는 할머니의 무릎에서 상상력을 떠올리고 지혜를 배우며 자랐습니다. 이야기할머니들은 무릎교육을 되살린다는 자부심에 대본을 외우고 또 외웁니다.
안동=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슬로 뉴스] “와∼ 오늘도 이야기 보따리 한아름 안고 오셨네”…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를 아시나요
입력 2016-01-29 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