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희대의 망국법’으로 규정한 현행 국회법(일명 국회선진화법) 입법 과정에서 누가 잘못했는지에 대해서는 답이 명확하게 나와 있다. 2012년 4월 19대 총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개혁의 일환으로 국회선진화법을 공약했다. ‘동물국회’를 시정하기 위해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이었다. 총선에서 과반을 차지한 새누리당 안에서 ‘식물국회’가 우려된다며 반대하는 의원이 많았음에도 박 위원장은 입법을 독려했다. 대선을 준비해야 하는 박 위원장 입장에서 공약 파기가 쉽지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소수파의 발목잡기를 제도화하는 입법을 주도한 건 사실이다.
김 대표의 26일 ‘권력자’ 발언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국회선진화법은 그해 5월 국회 본회의에서 찬성 127, 반대 48, 기권 17로 가결됐다. 사회를 맡았던 정의화 현 국회의장과 김무성 대표, 이회창 정몽준 조순형 윤상현 의원 등은 반대표를 던졌다. “우리 당내 많은 의원들이 반대했는데, 권력자(박 위원장 지칭)가 찬성으로 돌자 반대하던 의원들이 모두 다 찬성으로 돌아버렸다”는 김 대표 발언은 당시 분위기를 비교적 정확히 전달했다고 본다. 김 대표 발언이 의도적인 건지, 실언인지 분명치 않지만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과거 잘못의 책임소재를 따지기보다 서둘러 법을 고쳐야 한다는 사실이다.
국민 다수가 국회선진화법의 문제점을 인정하지만 4월 20대 총선 이후에는 지금보다 개정 작업이 더 큰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다. 이 법이 다수당에겐 ‘악법’이지만 소수당에겐 더없이 좋은 법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든 야든 소수당 입장에선 향후 4년을 의식해 법 개정에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총선을 앞두고 여론을 살피지 않을 수 없는 지금이 개정의 적기다. 새누리당은 친박, 비박으로 편 갈라 싸울 때가 아니다. 시간이 촉박하지만 야당을 설득해 비민주적, 비효율적인 이 법을 고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새누리당은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가 본회의 부의를 요구하는 법안을 직권상정토록 하는 내용의 ‘권성동 의원 법안’만 고집해선 안 된다. 야당에 백기를 들라고 하면 협상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정의화 의장이 제안한 중재안은 일정 부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제도)으로 지정된 안건의 심의 시한을 현재 330일에서 75일로 대폭 단축하면 입법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다고 본다. 경우에 따라선 두 안을 절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가칭)국민의당도 새누리당의 법 개정 요구에 전향적으로 응해야 한다. 국회선진화법에 잘못이 없다고 고집부리면 결국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할 것임을 명심해야겠다.
[사설] 국회선진화법 책임 따지기보다 당장 개정에 힘쓰라
입력 2016-01-27 1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