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어려운 이웃 위해 쪽방 주민들의 값진 나눔… 인천 만석동 어르신들, 134만 4000원 기부

입력 2016-01-27 20:17
인천 중구의 쪽방촌에 사는 주민들이 작은 정성을 모아 8년째 더 어렵고 힘든 이웃들을 돕고 있다. 사진은 쪽방촌 주민 이정성씨(앞줄 왼쪽 두 번째)가 지난해 1월 김주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에게 모금함을 전달하는 모습. 쪽방상담소 제공

인천 중구 참외전로 151번길. 동인천역 철로를 등진 채 뻗어 있는 좁은 골목길엔 새벽부터 내린 눈이 곱게 쌓여있었다. 녹아내린 부분은 칼바람에 빙판이 되어 있었다. 걸음을 내딛기가 조심스러웠다. 여기저기 벽에 금이 간 집들을 지나 성인 발바닥 절반만한 철제 계단을 올라서자 연탄 가루가 묻어있는 문고리가 보였다. 26일 찾은 이곳은 인천의 대표적 쪽방촌 한 구석에 자리 잡은 이정성(75)씨의 보금자리다.

10㎡(3평) 남짓한 공간에는 연탄난로 하나와 쌓아둔 두루마리 휴지, 라면 상자, 약봉투를 정리해 놓은 서랍장이 빼곡히 자리 잡고 있었다.

“여기 산 지 6년쯤 됐지. 연거푸 사업에 실패하고 호형호제하던 사람한테 사기까지 당하고 나니 아내도 자식도 다 떠나가더구먼. 그래도 빈털터리로 여관에서 쫓겨나던 때에 비하면 지금은 행복한 거야.”

‘최강 한파’가 막바지 기승을 부리고 있었지만 이씨는 “추위에는 이골이 났다. 끄떡없다”며 웃어보였다. 기나긴 밤을 보내는 데 드는 연탄은 서너 장. 그는 “전기장판도 전기료 걱정 때문에 마냥 켜둘 수는 없다”며 “자기 전에 5단으로 해뒀다가 잠들기 전에 1단으로 바꿔두면 그럭저럭 버틸 만하다”고 노하우를 전했다.

처한 환경에 비해 이씨는 유독 표정도 밝고 목소리에는 힘이 넘쳤다. 이씨는 “가진 건 별로 없지만 그래도 아직은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 힘이 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쪽방상담소 동료들, 노숙인 쉼터 입소자 등과 함께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34만 4000원을 기부했다. 쪽방촌 주민들의 자활을 지원하는 인천내일을여는집(이사장 이준모 목사)이 지난해 12월 9일부터 보름 동안 쪽방상담소, 노숙인 쉼터, 무료 급식소에서 펼친 모금 활동에 참여한 것이다.

올해로 8년째인 모금에는 볼펜을 조립해 번 돈, 폐지를 모아 판 돈 등 100원짜리 동전부터 꼬깃꼬깃 접힌 1000원, 5000원짜리 지폐까지 모금함을 가득 채웠다. 이씨는 “매달 자활사업에 참여해 버는 돈과 노인연금을 합해도 30만원이 채 안 되지만 작은 마음이 모이면 나보다 어려운 사람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고 말했다.

이씨와 함께 찾아 간 만석동 자활사업장에는 15명이 볼펜 조립에 한창이었다. 이씨와 한마음으로 이웃 섬김에 참여한 낮은 자리의 천사들이다. 11년 전 쪽방상담소가 생길 때부터 함께 해왔다는 김제순(89·여)씨는 “따뜻하고 밥도 먹여주고 이렇게 쉴 새 없이 손가락을 움직이니 치매도 안 오고 다른 사람도 도울 수 있으니 1석4조”라며 활짝 웃었다. 박종숙 쪽방상담소장은 “8년 동안 기부한 금액을 다 합치면 940만원에 달한다”면서 “전에는 남이 하니까 마지못해 하는 분들도 있었는데 이제는 서로 나눔을 독려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하다”고 귀띔했다.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되는 자활사업장에는 인근 쪽방촌 주민 30여명이 등록돼 있다. 이곳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균등하게 돌려받는다. 매주 금요일 점심에는 예배를 드리며 서로를 위한 기도제목도 나눈다. 이씨는 “평생 절, 성당, 교회 아무데도 안 다녀봤지만 금요일에 서로 기도하고 나면 속상했던 일도 눈 녹듯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이준모 목사는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작은 것일지 몰라도 자신의 전부를 내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쪽방촌 주민들”이라면서 “낮은 자의 하나님으로 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삶으로 실천하는 현장이 이곳”이라고 전했다. 인천=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