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너 번쯤? 읽다가 멈춰야 할지도 모른다. 그대로 눈물을 몇 방울 흘려도 좋다. 남의 일 같지 않다. 이토록 순수한 투쟁이 승리해서 다행이다. 이 가족의 얼굴이 보고 싶어질 수도 있다. 책에는 사진이 없다. 귀여운 일러스트레이션이 몇 장 들어있는데, 정말 이렇게 귀여운 가족일까 궁금해진다.
김정은씨는 “병든 몸으로 돌아왔다.” 10년 넘게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했는데 건강이 나빠져 집에 들어앉았다. 남편 유형선씨는 구조조정 대상이다. 지금은 파업 중. 외국계 금융회사에 다닌다. 일곱 살, 세 살, 두 딸이 있다.
평범했던 김정은씨 가족의 삶은 2012년 어느 날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몸이 아픈 김정은씨는 가사와 육아를 해내기에 벅찼고, 두 아이들은 돌아온 엄마와 갈등했다. 일에 바빠 애들을 방치했던 시간이 너무 길었다. 유형선씨의 직업조차 불안정해지면서 집을 서울에서 파주로 옮겼다. “세상 한 가운데서 중심을 잡고 사는 일은 참 만만치 않다.” 가족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 가족은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김정은 유형선 부부가 쓴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은 이 가족이 겪어온 지난 3년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놀라운 건 이들이 일어섰다는 것이고, 그 힘이 다름 아닌 독서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흔히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을 하지만 실제 믿어지는 얘기는 아니다. 그런데 이 가족은 책으로 삶의 길 찾기가 가능하다는 걸 동화가 아닌 실화로 증명했다.
집에서 눈물과 한숨으로 지내던 김정은씨는 유치원도 학원도 그만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동네 작은 도서관에서 엄마들과 어울렸고, 딸들과 함께 도서관에 다녔다. 아이들과 같이하는 책 읽기는 아픈 몸으로 할 수 있는, 어쩌면 가장 저렴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효과는 대단했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으며 나는 다시 기쁨을 찾았다…퇴사 후 처음으로 행복이 다시 찾아왔고 아이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드리워졌다.”
‘아이들과 함께 책 읽기’는 ‘가족과 함께 책 읽기’가 됐고, ‘동네 아줌마들과 책 읽기’, ’초등학생들과 책 읽기’ 등으로 확대됐다. 책 읽기는 김정은씨에 새로운 직업을 선사하기도 했다. 초등학교에서 책 읽어주기 봉사를 하다가 강사로 채용된 것이다.
“그랬다. 나는 일하기를 너무나 좋아했고, 월급도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일도 없이, 없으면 죽는 줄만 알았던 월급도 없이, 나는 3년 넘게 잘 버티고 있다.”
이 책은 사람이 다시 일어나는 과정에서 책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를 감동적으로 증언한다. 삶의 위기를 헤쳐 나가는 힘은 내면에서 나온다는 것,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좋은 어른이 돼야 한다는 것, 아이들을 기다리고 지켜봐줘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독서를 통해 가능하다는 걸 알려준다.
이 책은 한 가족의 독서 기록이면서 보통의 가족이 살면서 흔히 만나게 되는 질문들을 소명, 가족, 형제, 우정, 배움, 국가 등 10가지로 정리해 각각에 도움이 될만한 책을 소개한 독서 가이드로도 읽을 수 있다.
실직, 육아, 자녀 교육 등을 배경으로 한 가족의 이야기, 잘 구성된 도서 목록, 책과 가족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결합시킨 구성, 각 장의 마지막에 붙은 편지글, 공들인 일러스트레이션, 여러모로 칭찬할 데가 많은 책이다. 인생의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을 사람들에게, 그 가족들에게 이 책이 전해지면 좋겠다.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책과 길-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 함께 책을 읽으며 다시 일어선 가족
입력 2016-01-29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