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기수] 옥상에 흡연부스 만들자

입력 2016-01-27 18:17

“5년 전 내 모습이 저랬을 것이다.” 엊그제 최강 한파가 한반도를 뒤덮었을 때 문득 품은 생각이다. 근무 중 흡연 욕구를 못 이겨 한데로 나와 담배를 피우는 직장인들을 보고 나서다. 그들이 측은해 보였기 때문이다. 잠시 숨을 멎고 길을 막고 선 그들 사이를 빠져나오며 새삼 담배 끊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해마다 1월이면 반복되는 흡연자들의 금연 결심. 올해도 벌써 작심삼일에 그친 흡연자들의 한숨 소리가 곳곳에서 들리고 있다.

그런데 흡연자들은 꼭 이렇게 보기 불편하게 담배를 피울 수밖에 없는 것일까. 흡연자들이 금연에 성공하는 그날까지 편하게 담배를 피우고, 나아가 비흡연자의 간접흡연 피해도 줄이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흡연자들이 건물 출입구 근방이나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면 비흡연자의 간접흡연 피해를 증폭시키는 부작용을 낳기 마련이다. 간접흡연은 직접흡연 못지않게 건강에 큰 피해를 준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됐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07년 간접흡연에 관한 수많은 연구결과를 근거로 “안전한 수준의 간접흡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천명한 것도 같은 취지에서다.

비흡연자의 간접흡연을 막고, 흡연자도 비흡연자의 따가운 눈총을 받지 않는 가운데 편하게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일본과 싱가포르가 강력한 금연캠페인과 더불어 흡연구역을 설치하는 등 흡연자를 위한 배려도 아끼지 않고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방도가 없는 것이 아니다. 바로 흡연구역 설치에 관한 기준과 방법을 명시한 국민건강증진법시행규칙에 답이 있다. 실내 전면 금연구역을 시행 중인 건물(학교, 의료기관, 어린이집, 도서관, 청소년 활동시설, 어린이 놀이시설)의 경우 해당 시설의 이용자 및 어린이·청소년의 간접흡연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실외에 흡연구역을 설치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또 실외 흡연구역에 대해선 “옥상에 설치하거나 각 시설의 출입구로부터 10m 이상의 거리에 설치하여야 한다”고 규정해 놓고 있다.

이 규정을 “옥상이나 각 시설의 출입구로부터 10m 이상 떨어진 곳에 흡연부스를 설치하여야 한다”로 개정하면 어떨까 싶다. 관련 법규에도 근거가 마련돼 있는 흡연구역이 현실에선 찾아보기 힘들다보니 흡연자들이 건물 밖 길거리로 내몰리고, 그로 인해 비흡연자는 간접흡연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담뱃세 인상으로 흡연자들이 내는 세금은 지난해 10조원에 이어 올해 12조원을 웃돌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하지만 이 수익 중 건강증진기금으로 충당되는 것은 약 18.7%에 불과할 뿐이다. 그마저 3분의 2가량은 건강증진과 전혀 상관없는 사업에 쓰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거두는 게 세금이라면 담뱃세 인상에 따른 수익 증가분 역시 흡연자들과 흡연으로 인한 질병 예방 및 극복을 위해 쓰는 게 맞다고 본다. 담뱃세로 늘어난 세수 일부를 옥상이나 공공장소 흡연부스 설치비용으로 지원, 흡연자들이 더 이상 건물 밖 길거리로 내몰리지 않게 해줄 필요가 있다.

흡연자들이 다른 사람에게 혐오감이나 간접흡연 피해를 줄 수 있는 보행 또는 운전 중 흡연을 금지하는 범국민 캠페인도 필요하다. 세수 때문에 아예 담배를 생산·판매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할 수 없고, 흡연자들이 담배를 피우지 못하도록 강제할 수도 없다면 비흡연자의 간접흡연 여지를 없애주는 정책이라도 열심히 펴야 한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