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잠에서 깨어나면 가장 먼저 무엇을 봅니까. 프랑스 작가 크리티앙 보뱅은 “사람은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모습이 변한다.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참 모습이 드러나고 진정한 이름이 주어진다”고 말했습니다. 돈만 바라보는 사람은 수전노가 되고, 정욕만 보는 사람은 색마가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보라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 여기서 ‘흔들리는 갈대’와 ‘화려한 옷’은 사람의 겉모습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사람의 겉은 보면서 내면은 잘 보지 못합니다.
본문 26절에서 예수님은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선지자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훌륭한 자니라”고 하시며 세례 요한에게서 진정한 선지자의 모습을 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선지자란 하나님의 뜻을 미리 알고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는 사명을 가진 사람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 탄생 6개월 전에 태어나서 예수님의 앞길을 예비했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외쳤습니다. 또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니라”며 예수님을 소개했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은 세례 요한을 바로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회개를 의미하는 요한의 세례를 받지 아니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렸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세례 요한의 겉모습만 보면서 그의 내면의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책망처럼 요한의 설교를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소리 정도로 들었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긴 옷을 입으며 아름답고 화려한 옷에 탐을 내는 그들이 허름한 약대 털옷의 옷차림에다 자신들을 책망하는 설교를 하는 세례 요한을 무시한 것은 당연했습니다.
지난해 5월 한국에서는 ALC(Asian Leadership Conference) 모임이 있었습니다. 세계적인 석학과 기업인 등 100여명이 21세기 한국과 아시아, 지구촌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를 토론하는 자리였습니다. 누구보다 리더들이 현실을 바로 본다면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보아야 합니다. 다윗은 시편 121편 1∼2절에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산을 보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본 것입니다.
시대의 예언자요 선지자인 세례 요한에게서 하나님의 뜻을 보지 못한 율법사들과 바리새인들의 어리석음을 생각하며 우리는 어떤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흔들리는 한국사회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보십니까.
김대경 목사(홍성제일감리교회)
[오늘의 설교] 무엇을 보느냐
입력 2016-01-27 17: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