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때 ‘결혼 준비 특강’이라는 교양 과목이 있었다. 제목도 재밌고 결혼 준비를 하는데 무슨 수업까지 들어야 하느냐는 의아심도 있어서였는지 아직도 이 과목과 관련한 기억이 남아 있다. 듣지 않았고, 솔직히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수업을 받은 몇몇 과 친구들의 반응이 예상 외로 좋았다. 강의는 결혼은 남녀의 단순한 결합이 아니라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성인 남녀가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이며, 여기서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갈등을 잘 다뤄야만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다는 내용 등이었다. 금실 좋은 부부들의 초청 강연과 역할극도 있었다. 수업은 특히 캠퍼스 커플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학점도 후한 편이었던 것 같다.
요즘 같은 전시(戰時)가 아닌 평시(平時)에 우리가 몸서리를 칠 만한 일이 평생 몇 번이나 있을까?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숨지게 한 뒤 아버지가 시신을 훼손하고 냉장고에 보관했다는 뉴스를 처음 접하고 소름이 쫙 끼쳤다. 아이가 뭘 그리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까. 그런데 90㎏ 거구의 아버지가 16㎏도 안 되는 아들을 권투하듯 두들겨 패 숨지게 했으며, 치킨을 시켜 먹고, 엄마까지 아들의 시신 훼손에 가담했다는 수사 결과에는 심한 몸서리가 쳐졌다. 자꾸 아이의 죽어가는 모습과 시신을 훼손하는 장면이 상상돼 괴로운 이들이 한둘이 아닐 텐데, 정작 이 부모는 죽은 아들에게 참회의 눈물조차 보이지 않았단다.
하루가 멀다 하고 부모의 잔인한 자녀 학대가 세상에 알려지고 있다. 생후 9개월 된 여자아이가 엄마의 발길질에 맞아 숨지기도 하고, 빚에 시달린 가장은 자녀들을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문화인류학은 인간사회 비극의 출발점을 ‘존재(to be)’와 ‘소유(to have)’의 개념에서 종종 찾는다. 원시 인류가 존재 의식으로만 이뤄져 있을 때는 사냥물이나 식량, 여자 등 남의 것을 탐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 살았으니 다툴 일도 없었다.
그런데 소유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인류의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하나를 가진 이는 둘을 욕심내게 됐으며, 결국 남의 것을 빼앗기 위해 전쟁도 불사했다. 규모만 다를 뿐 세계대전도 결국은 내 몫을 더 챙기기 위해 남의 것을 훔친 대규모 살육에 불과했다.
이러다보니 고대사회에서 절대적 생산 수단이었던 사람 역시 소유의 단위로 치부됐다. 아내(또는 남편)와 자녀는 재산의 일부가 됐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자행되고 있는 아동 살해는 부모들이 이런 소유 개념을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극단적 사례다. 내가 기른 딸의 목숨을 내가 끊고 간다는 아버지, 아들 시신을 훼손하면서도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어머니에게 자식은 한낱 소유물에 지나지 않는다.
뒤늦게 정부와 경찰이 나서서 학교에 오랫동안 나오지 않은 아이들을 집중 관리하고 아동 학대 징후가 있으면 즉각 신고하라고 채근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이제는 부모다운 부모가 되는 훈련이 필요하다. 지방자치단체와 동사무소도 좋고, 대학이나 백화점의 문화센터도 괜찮다. 심리학자나 교육 전문가, 부부상담 전문가들이 총동원돼 예비 부모나 어린 자녀를 둔 부모, 아이들과 심한 갈등을 겪는 부모들을 대상으로 ‘부모 준비 특강’을 할 때다.
이를 통해 아이들이 내 것이라는 소유 의식 하나만 바로잡아도 제2의 부천 초등생 사망·시신훼손 사건을 막을 수 있다. 내가 낳아 길렀어도 아이들은 하나님이 잠시 맡겨 놓으신 선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생명을 그리 가볍게 다루진 못할 게 분명하다.
한민수 문화체육부장 mshan@kmib.co.kr
[데스크시각-한민수] 부모 준비 특강
입력 2016-01-27 1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