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화된 식습관과 생활환경은 우리 삶에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과거에 비해 청소년 평균 키가 훌쩍 커진 것이 긍정적 변화라면, 예전에 북미나 북유럽 등 서구 국가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질환의 국내 발병률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는 달갑지 않은 변화도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염증성 장질환의 한 종류인 ‘궤양성대장염’이다.
궤양성 대장염은 우리 몸이 스스로를 공격하는 자가 면역질환의 일종으로, 대장 점막층에 염증이 발생하는 만성 질환이다. 국내 궤양성 대장염 환자 수는 2014년 기준 약 3만3000명에 달하는데, 발병률 증가 추세를 보면 1986∼90년 사이 인구 10만 명당 발병률이 0.34명에 불과하던 것이 2006-2012년 사이에는 4.6명으로 20년 사이 약 14배나 증가했다.
궤양성 대장염의 발병 원인은 아직까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서구화된 식생활을 그 첫 번째 요인으로 꼽고 있다. 그러나 서구의 여러 국가에서도 20세기 초 이후 궤양성 대장염의 발생 빈도가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 것을 감안한다면, 서구화라는 표현보다는 서구 산업화가 더 정확한 표현이다.
그 증거로 서구인들의 유제품과 육류 섭취, 정제 설탕의 과다 섭취를 한 원인으로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선진국에서도 이러한 유제품과 육류가 널리 유통되게 된 시기는 산업화 이후 냉동 보관과 운송이 일반화된 20세기 이후임을 감안한다면, 음식물 종류의 차이뿐 아니라, 음식물 생산과 보관에 관련되는 여러 색소, 방부제, 항생제, 호르몬 등 여러 산업화된 첨가물 등이 그 원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추론해 볼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산업화로 인한 오염물질의 증가와 함께 장기 유통되는 고단백, 고지방 식사와 정제설탕의 과다섭취 등 서구화된 식습관이 궤양성 대장염 발생 증가의 원인이 되고 있다. 특히 궤양성 대장염 유병률이 낮은 지역에서 높은 지역으로 이주한 사람들의 자녀 세대에서 질환 발생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 환경적 요인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진료를 하다 보면, 호주, 뉴질랜드, 북미 등으로 유학을 간 학생이나, 반대로 중국에서 한국으로 이주한 중국동포 가운데서 궤양성 대장염을 포함한 염증성 장질환 환자가 많은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궤양성 대장염이 발병하면 주로 혈변을 동반한 만성 설사와 복통을 겪게 되는데, 병이 진행될수록 배변 횟수가 늘어나 심하면 하루에 십여 번씩 화장실을 가는 경우도 있다. 이 외에도 대변에 점액이 섞여 나오거나 대변을 보고 나도 시원치 않거나, 항문 속이 아픈 증상, 변을 참지 못하는 급박감 등이 나타날 수 있으며 심한 경우 설사와 탈진, 고열, 복통 등의 증세를 보여, 입원 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다. 증상이 식중독이나 감염성 장염과 비슷해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3∼4주 이상 이런 증상들이 지속될 경우 궤양성 대장염을 의심해 소화기 내과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 볼 필요가 있다.
궤양성 대장염 치료에서 중요한 것은 질환을 빨리 발견하는 것이다. 가능한 증상이 심하지 않은 초기에 또는 병변의 범위가 작을 때 치료를 시작하면 증상을 다스리기가 훨씬 쉽기 때문이다. 연구에 따르면 국내 궤양성 대장염 환자 중 97%는 증상이 처음 나타났을 때 빨리 발견해 약물치료를 시작하면 증상이 가라앉거나 사라지는 관해기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므로 의심증상이 있을 경우 가급적 빨리 병원을 방문하는 것이 좋다. 최근에는 대장내시경 검사가 보편화되어 있어, 검사를 통해 쉽게 진단이 가능하다.
궤양성 대장염 약물치료에는 일반적으로 항염증제, 부신피질호르몬제, 항생제, 면역조절제 등이 사용된다. 특히 최근에 개발된 생물학적 제제인 항TNF제제는 염증을 일으키는 화학물질인 종양괴사인자의 활동을 선택적으로 억제해, 염증 반응을 줄이고 손상된 장 점막의 회복을 도와수술 가능성을 낮추는데 효과를 보여, 궤양성 대장염 환자 치료에 큰 전환점을 가져왔다.
궤양성 대장염은 조기에 발견해 적절한 치료를 하면 큰 무리 없이 일상생활을 해나갈 수 있는 질환이다. 다만 증상이 사라졌다고 환자가 임의로 약을 끊는 경우증상이 악화되거나 합병증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주치의와 충분한 상의를 통해 해야 한다.
최용성 대항병원 소화기내과 부장
[건강 나침반] 산업화가 부른 궤양성 대장염… 20년새 14배 늘어
입력 2016-01-31 17: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