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실버타운에는 치매 부부가 함께 살고 있다. 둘은 비슷한 시기에 치매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진행정도가 달랐다. 아내의 상태는 남편보다 급속히 나빠졌다. 아내는 헛것을 자주 봤고 누군가 집에 숨어있다는 말을 주변인들에게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을 괴롭힌다고 했다. 남편은 주치의에게 하소연했다. 약을 좀 더 센 것을 써야 하는 것 아니겠냐며 아내의 망상을 잡아줄 ‘강한 약’을 처방해줄 것을 의사에게 요청했다.
치매노인 중 망상, 환시, 환각과 같은 정신행동장애가 나타나면 그에 맞는 약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약은 향정신성약물로 문제가 되는 정신행동을 효과적으로 다스리는 대신 약물 부작용의 위험도 크다. 의료진은 지금 당장은 약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남편과 아내를 각각 불러 면담을 시작했다.
면담에서는 뜻밖의 사실이 밝혀졌다. 아내가 망상증상을 보이자 초로기 치매를 앓고 있는 남편은 아내를 쥐어박기 일쑤였다. 헛소리 하지 말고, 헛것 보지 말라며 아내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의료진은 남편을 설득했다. 아내의 망상은 아내의 의지로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치매 남편에게 설명했다. 남편은 이해하는 듯 했다. 비록 치매를 앓고 있는 그지만 아내가 아프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망상에 사로잡힌 아내를 쥐어박는 대신 아내를 가엾게 여겼다. 그리고 망상에 사로잡힌 아내의 말동무가 되어주었다. 그 후 아내는 누군가 보인다는 말하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또 집 어딘가 숨어 사는 그가 더 이상 자신을 괴롭히지 않는다고도 했다. 결국 아내의 망상을 심화시킨 것은 남편의 꾸지람과 학대였다.
이들 부부의 주치의는 기자에게 말했다. 치매가 진행되는 상당수의 환자가 망상과 환시, 환각에 호소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때마다 소위 ‘강한 약’을 쓰면 환자는 약에 빠져 정상적인 생활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일종의 약물 부작용이다. 치매환자의 증상을 좋아지게 하는 것은 약이 아닌 근본적인 가족의 사랑에 있다는 사실을 재차 강조했다. “치매는 보호자를 힘들게 하는 병입니다. 하지만 보호자가 치매환자에 대한 애정을 잃어가는 순간 질환은 급속도로 나빠집니다. 강한 약 대신 진정한 가족애를 보여주세요.”
김단비 기자 kubee08@kukimedia.co.kr
[김단비 기자의 병원 취재파일] 치매환자에게 ‘강한 약’ 대신 애정 주세요
입력 2016-01-31 17: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