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세상 얼어붙던 날… ‘冬心’ 녹인 사람들

입력 2016-01-27 04:11
한파주의보가 발령된 22일 서울 구로구 소속 방문간호사가 독거노인을 찾아 혈압을 체크하고 있다(왼쪽 사진). 노숙인 시설 ‘다시서기 종합지원센터’ 직원들이 24일 서울역 인근 거리에서 노숙인에게 건강 상태를 묻고 있다. 구로구·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제공

‘최강 한파’가 기승을 부렸던 지난 1주일간 저체온증이나 동상으로 10명이 목숨을 잃는 등 추위 관련 질환자가 평소보다 3배 이상 늘었다. 질병관리본부는 18∼24일 모두 27명이 한랭질환에 걸렸고 이 중 10명이 숨졌다고 26일 밝혔다.

한파가 전국을 휩쓴 한 주 동안 발생한 한랭질환자는 동절기 평균(39.2명)의 3.2배였다. 사망자 역시 평상시(2.2명)의 4배를 넘었다. 동상 환자는 6.7배나 됐다.

이렇게 매서운 한파 속에서도 그늘진 곳을 살피는 눈길은 있었다. 추위에 가장 취약한 노숙인과 독거노인을 누군가는 챙겨야 했다. 지방자치단체, 복지시설, 경찰에는 혹한에 맞서 생명을 지키려고 추울수록 더 바빠지는 이들이 있다.

◇‘노숙인의 대부’ 서울역 경찰관=15년 만에 서울이 영하 18도를 기록한 24일 오전 6시. ‘노숙인의 대부’라 불리는 한진국(55) 경위가 서울역파출소를 나섰다. 서울역 인근의 노숙자는 모두 500여명. 한 경위는 매서운 한파에 이들의 건강이 염려돼 평소보다 일찍 순찰을 시작했다.

4, 5차례 서울역 일대를 돌고 나서 저녁 무렵 한 경위가 찾아간 곳은 서울역과 한 대형 건물을 잇는 지하통로였다. 100m 남짓한 통로에는 평소 노숙인 80여명이 모여들어 잠을 청한다. 갖은 옷가지와 종이박스, 스티로폼으로 무장하고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다.

한파가 시작된 18일 이후 이곳을 찾는 노숙인은 20∼30명으로 눈에 띄게 줄었다. 특히 24일 저녁에는 15명만 통로에 누워 있었다. 인근 교회나 노숙자보호센터 등에서 추위를 피할 기회를 놓친 이들이다.

지하통로는 바깥보다야 따듯하지만 온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공간이다. 찬바람이 계속 들어온다. 한 경위는 노숙인 한 명 한 명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건강 상태를 살폈다. 지난해 1월부터 노숙인을 전담하게 된 그는 서울역 일대에서 두 번째 겨울을 보내고 있다. 특히 강추위가 시작된 이후 동사자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가장 크다고 했다.

◇“품안에 넣어드릴게요”=서울역 앞 노숙인 시설 ‘다시서기 종합지원센터’ 직원들도 바쁜 한 주를 보냈다. 이종만 실장은 24일과 25일 밤을 새웠다. 술을 마실 수 없어 센터를 기피했던 노숙인들이 추위를 피해 몰려와 평소보다 2배 많은 160명을 챙겨야 했다. 그래도 인근 거리에서 잠을 청하는 노숙인이 80명가량 남아 있었다.

24일 오후 이 실장은 직접 거리로 나섰다. 핫팩과 목도리, 장갑을 들고 서울역 곳곳을 누볐다. 평소 말을 걸어도 대답조차 않던 노숙인들이 그를 보고 손을 들어 반겼다. 핫팩 좀 더 달라는 요청이다. 이 실장은 “품안에 넣어드릴게요” 하며 잽싸게 온도계를 꺼내 체온을 쟀다. 평소 몸에 손대는 걸 꺼리는 이들의 건강을 체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 실장은 “말을 걸면 욕도 하시던 분이 두 손을 잡고 고맙다고 하니 참 뿌듯하다”며 웃었다.

센터에는 시민들의 성원도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 노숙인협회에서 센터에 핫팩 10만개를 지원했고 익명의 시민이 라면과 핫팩, 목도리 등 방한용품을 살짝 놓고 갔다. 이 실장은 “살을 에듯 추워도 힘이 난다. 날씨는 춥지만 마음이 따뜻해져 힘을 내게 된다”고 했다.

◇혹한의 순찰과 밤샘 대기=서울 영등포구청 이규상 주무관은 1주일 전부터 24시간 간격으로 현장근무를 서고 있다. 임무는 영등포구의 여러 공원 등에 퍼져 있는 100여명 노숙인의 건강을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것이다. 영등포구는 이들을 위해 6명이 3교대로 순찰하고 있다. 공원에서 자고 있거나 술을 마시는 노숙인을 찾아내 보호시설로 안내한다.

응급 상황이 있을까 싶어 사무실에서 밤새 대기하는 날이 이어지고 있다. 이 주무관은 “직업이 이거니 해야죠”라며 “체감 온도가 영하 20도 가까이 떨어져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에 어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 양천구는 지난 19일 50대 후반 노숙인이 오목교 아래에서 자고 있는 것을 발견해 고시원으로 안내하고,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돕기도 했다.

박세환 김판 민태원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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