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토요일 저녁 비보를 들었다. 일본의 양심 도이 류이치 전 의원이 별세했다는 것이다. 가슴이 무너지고 흘러내렸다. 도이가 누구인가? 그는 원래 일본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7선 국회의원이었다. 그런데 2011년 92주년 3·1절에 우리 교회를 방문해 독도의 한국 영유권 주장을 담은 한·일 공동선언문을 낭독하고 서명한 사건 때문에 큰 고초를 겪었다.
도이 전 의원이 일본 나리타공항에 도착하자 우익 세력은 물론 신문과 방송사들이 마녀사냥식으로 취재했다. 하지만 그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다가 정치생명뿐 아니라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극심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그런데 도이 전 의원이 그렇게 했던 이유가 있었다. 그는 조선총독부 간부의 아들로 태어나 서울 동대문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일본인 교사들과 일본인 학생들이 조선말을 쓰는 학생을 구타하는 것을 보고 자랐다. 자신도 조선인 학생을 때리기도 했다. 그런 그가 훗날 기독교에 귀의하여 기독교적 세계관과 양심을 소유하게 됐다. 그때부터 그는 지난날 일본이 한국에 가한 만행이 용납되지 않아 자책감이 들고 괴로웠던 것이다.
그런 그가 정치 생활을 하면서 한국의 김영진 전 국회의원을 만나게 됐다. 김 전 의원은 아버지가 일본 노무자로 끌려가서 폐인(廢人)이 되어 돌아왔기에 일본에 대해 누구보다 증오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역사적이고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되면서 한일기독의원연맹이 결성됐고 나는 그 기관의 지도목사가 되어 매년 삼일절과 광복절에 우리 교회에서 기념예배를 드렸다. 그때마다 도이 전 의원은 몇 명의 일본 기독교 신자 의원들과 동행해 지난날 일본의 만행과 과오를 고개 숙여 참회했다.
그랬던 그가 모든 것을 잃고 PTSD로 고통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김 전 의원과 함께 일본으로 가서 눈물로 위로하고 기도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원망하는 마음 없이 평온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오히려 홀가분합니다. 모든 것을 잃었지만 내 양심이 이렇게 편할 수가 없네요. 나라고 어찌 일본을 사랑하지 않겠습니까마는 그래도 폐쇄적 민족주의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되지요. 예수님도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자였지만 인류의 화해를 위해서 고난을 선택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작게나마 실천했을 뿐입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우리를 위로하고 어깨를 두드려 주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가 한·일 간의 진정한 용서와 화해를 위해 애쓴 공로를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의미에서 세계성령봉사상을 시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후 PTSD로 인해 뇌혈관에 문제가 생겨 도이 전 의원은 결국 병원 신세를 지게 됐다. 그러다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주일만 아니었으면 당장 달려갔을 텐데 너무 죄송하고 안타까웠다. 도이 전 의원의 장례식은 가족장으로 잘 마쳤고 다음달 29일 국회의원회관 대강당에서 3·1절 기념식 및 추모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도이 전 의원은 한국에 올 때마다 반드시 우리 교회를 방문했다. 언젠가 한복을 맞춰 드렸더니 어린아이처럼 너무 좋아하면서 “이 한복을 입고 일본 의회에 등원하겠다”고 했던 얼굴이 눈에 선하다. 그는 뇌혈관 문제로 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도 끊임없이 아베 정권을 비판했다.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과 강제 징용된 노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보상해야 한다면서 말이다. 그는 한 사람의 크리스천으로서 신앙의 양심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도이 전 의원이 그렇게 했다고 해서 한·일 관계가 달라진 건 없었다. 그가 그토록 애쓰고 노력했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허공을 친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양심을 다해 한·일 간의 진정한 용서와 화해의 꽃씨를 뿌렸고 끊임없이 일본을 대표해서 사죄했다. 그는 떠났다. 그러나 그의 정신과 양심, 믿음은 떠나지 않았다. 그의 정신과 혼은 앞으로도 현해탄을 오가며 메아리치는 꽃향기가 되리라. 한국교회는 그를 추모하고 일본에서 제2, 제3의 도이가 나오기를 기대하며 계속해서 화해의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작고 여린 화해의 꽃씨를 심고 저 천국으로 떠난 도이의 마지막 뜻이 아닐는지.
소강석(새에덴교회목사)
[소강석의 꽃씨 칼럼] 도이가 뿌린 꽃씨, 현해탄의 향기되리
입력 2016-01-26 18:30 수정 2016-01-26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