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정진영] 위안부 영화 ‘귀향’

입력 2016-01-26 17:45

사실에 바탕을 둔 영화는 힘이 세다. 영화 한 편으로 사회적 물결을 바꾸거나 적어도 그런 시도가 가능하도록 한다. ‘이태원 살인사건’은 미제로 남을 뻔한 사건을 재수사케 한 단초가 됐다. ‘도가니’는 장애학생 성폭행에 대한 공분을 불러 ‘도가니법’을 탄생시켰다. ‘살인의 추억’은 공소시효 제도 논란을 촉발했으며, ‘또 하나의 약속’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여직원의 백혈병 문제를 일단락 짓게 했다. ‘남영동 1985’와 ‘변호인’처럼 군사정권의 폭압성을, ‘부러진 화살’과 같이 사법부의 실태를 성찰케 하는 작품도 있었다. 마약범으로 오인돼 대서양의 섬에 2년이나 억울하게 갇혔던 한국 주부의 실상을 담은 ‘집으로 가는 길’은 과연 국가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되물었다.

‘귀향’도 마찬가지다. 일본군 위안부였던 강일출 할머니의 증언에서 비롯된 이 작품은 개인의 기억을 통해 공동체의 각성을 현재화하려는 노력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벽은 높았다. 인간의 존엄을 박탈당한 10대 소녀들의 실화가 영화로 완성되기까지 14년 걸렸다. 사안의 민감성, 예상되는 낮은 흥행에 대형 투자자들은 외면했다. 결국 7만3164명이 크라우드펀딩에 동참, 제작비의 절반이 넘는 12억원 정도를 모으고 배우와 스태프들이 사실상 재능기부를 함으로써 겨우 마무리됐다. 광복 70주년인 지난해 8월 15일 개봉하려 했으나 상영관을 구하지 못했다. 생존 위안부 피해자 보호시설인 ‘나눔의 집’에서 시사회를 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할머니들은 “(당시 상황과) 똑같다”며 목이 메었다.

지난주 낭보가 전해졌다. 배급사가 정해지고 상영일이 확정됐다. 조정래 감독은 “피어보지도 못하고 꺾여져 타향에서 돌아가신 20만명의 피해자, 특히 생존하신 마흔여섯 분의 나이가 90줄인 것을 생각하며 포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영화 포스터에는 ‘대한민국 국민이 만든 영화’라는 글귀가 박혀있다. 상영일은 다음 달 24일.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