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 막장드라마를 꾸짖다

입력 2016-01-25 21:45 수정 2016-01-26 00:16
‘막장 드라마’ 논란을 빚은 MBC ‘압구정 백야’의 한 장면. MBC 방송화면

가족시청 시간대에 ‘막장 드라마’를 방영한 방송사에 대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징계 처분은 정당하다고 법원이 판결했다. 막장 드라마 징계가 인정된 첫 판결이다. 패륜과 막말로 얼룩진 드라마가 사회에 미치는 해악을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가 담겨 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부장판사 차행전)는 MBC가 방통위를 상대로 “드라마 ‘압구정 백야’ 관계자를 징계한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고 25일 밝혔다. 재판부는 “방송사는 가족시청 시간대에 가족 구성원의 정서에 적합한 내용을 방송해야 한다”며 “‘압구정 백야’는 청소년의 건전한 인격 형성에 저해될 수 있어 징계는 정당하다”고 말했다. 방송심의 규정상 오전 7∼9시, 오후 1∼10시까지는 청소년시청보호시간대로 규정돼 있다.

‘압구정 백야’는 2014년 10월∼2015년 5월 매주 평일 오후 8시55분부터 30여분간 방영됐다. 딸 백야가 친엄마에게 복수하려고 엄마의 의붓아들을 유혹해 며느리가 되는 내용이다. 친엄마가 백야를 “버러지 같은 X”이라며 구타하고, 백야는 “버러지가 버러지를 낳았겠지”라고 소리치는 등 패륜적 소재로 눈총을 받았다. 의붓아들은 어머니 병문안을 갖다가 깡패들과 시비 끝에 벽에 머리를 부딪쳐 돌연 사망하기도 했다. 황당한 설정의 반복과 시청자 비판에도 불구하고 최고시청률 19.1%를 기록했다.

재판부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어머니·딸 사이의 폭언·폭력을 문제 삼았다. 대사와 방송 내용이 사회적 윤리의식을 저해하고 가족구성원 간 정서를 왜곡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의붓아들이 갑자기 사망하는 장면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억지스럽다”며 “생명윤리에 어긋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압구정 백야’ 작가 임성한씨는 앞서 ‘오로라 공주’에서도 막장 드라마 논란을 빚었다. MBC는 2013년 8월 ‘오로라 공주’로 제재를 받자 방통위 회의에서 “앞으로 임씨와 계약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다시 임씨가 쓴 ‘압구정 백야’를 방영했다.

MBC 측은 폭언·폭력 장면이 상식 범위 내에 있고 드라마의 전체 주제는 ‘권선징악’이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방통위는 지난해 4월 ‘압구정 백야’가 지나치게 비윤리적이라며 징계 처분을 내렸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