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역 체감온도가 영하 12.6도를 기록한 25일 정오 서울역 지하도. 거리의 매서운 한파를 피해 들어온 노숙인 10여명이 지나다니는 시민들 사이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한 노숙인은 대낮부터 술 냄새가 진동했다. 한편에는 노숙인들이 두고 간 짐들이 한데 묶여 있었다. 추위를 피해 곳곳으로 흩어지면서 그대로 두고 간 것이다.
노숙인을 10년째 돌보고 있는 십자가선교회 대표 이재민(58) 목사가 체크 무늬 목도리를 건네자 거슴츠레한 눈으로 앉아있던 한 노숙인이 반갑게 받아들었다.
“감사합니다. 힘들게 사는 우리들에게 목사님이 있어 좋습니다. 목사님은 우리 노숙인의 보호천사이십니다.”
“가장 필요한 게 뭔가요?”
“옷과 음식이죠. 하지만 사실은 춥고 배고픈 것보다 외로운 게 더 힘들어요. 따뜻한 관심이 제일 그립죠.”
한 70대 노숙인은 얇은 가을옷차림 그대로였다. 이 목사가 “괜찮으세요? 옷을 더 입으시면 좀 나으실텐데…”라고 다정스레 묻자, 이 노숙인은 “날이 추워도 옷이 없으니 어쩔 수 없지. 요즘은 경기가 좋지 않은지 누가 두툼한 잠바 하나 주는 사람 없소”라며 몸을 웅크렸다.
15년 만에 서울을 덮친 한파는 ‘풍찬노숙’에 길들여진 노숙인들에게도 견디기 힘들 정도로 매섭다. 하지만 수시로 건강상태를 살피고 따뜻한 음식도 건네는 기독 NGO와 교회의 구호팀, 시·구청 직원들이 있어 그나마 버티고 있다.
현재 서울역에는 6∼7개 선교단체와 교회들이 천막예배를 드리며 노숙인들을 섬기고 있다. 십자가선교회와 예수나라선교회, 부엘세바교회, 다음교회, 경제살리기선교회, 서울역거리교회 등은 매일 순번을 정해 예배를 드린다. 예배를 마치면 노숙인들에게 담요나 목도리, 생수, 옷, 양말, 장갑 등 계절에 맞는 생활필수품을 제공한다. 해돋는마을, 참좋은친구들, 나눔공동체, 감리교 따스한채움터 등 기독 NGO 10여 곳도 하루 평균 1000명이 넘는 노숙인들에게 식사를 제공한다.
노숙인사역 단체들은 다양한 복지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음악과 상담치료, 토론수업, 생활법률수업 등 노숙인 자활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 중 ‘자아존중감 회복 프로그램’은 많은 노숙인을 자활시켜 가정과 사회로 복귀하는 데 기여했다.
2007년부터 노숙인 사역을 해온 이 목사는 “돌이켜보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능력이 없었다면 이 일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폐지나 빈병을 주워 판 노숙인들이 건네는 사탕 몇 알, 피로회복 드링크 하나가 소중한 힘이고 능력”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기침체와 허술한 복지정책이 겹치면서 노숙인들의 수는 큰 변동이 없다. 보건복지부가 24일 발간한 ‘2014 보건복지백서’에 따르면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노숙인의 수는 2006년 1293명에서 2007년 1181명으로 다소 줄어들었다. 그러나 2014년 1138명으로 7년 동안 정체를 보였다.
노숙인들에게 필요한 맞춤형 지원도 부족하다. 특히 임시 잠자리나 쉼터, 샤워시설이 부족하다는 호소가 많다. 노숙인 박모(50)씨는 “인근에 노숙인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목욕탕이 하나 있는데 사람이 워낙 많다 보니까 순서가 밀려서 이용하기 힘들고 관리도 제대로 안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 목사는 “노숙은 경기침체, 주거비 상승, 장기실직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사회적 위험 중 하나”라며 “한국교회가 노숙인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고 배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글·사진=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최강 한파’와 싸우는 노숙인들… 교회가 있어 따뜻했다
입력 2016-01-25 20: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