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기 운항이 정상화된다니 더 바랄 것이 없죠. 공항에서 줄곧 기다리면서 혹시나 더 장기화되면 어쩌나 불안했는데 그나마 조금이라도 빨리 돌아갈 수 있어서 다행이네요.”
지난 23일부터 공항에서 밤을 보낸 이모(57)씨는 25일 항공기 운항이 재개된다는 소식에 피곤한 것도 잊은 듯 상기된 표정이었다. 그는 “주변 숙소도 예약이 꽉 차서 잘 곳을 구할 수도 없고, 혹시 일찍 운항 재개가 이뤄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버텼는데 꼬박 이틀 밤을 공항에서 지새웠다”며 웃음을 지었다.
이날 오후로 접어들면서 공항에 쌓여있던 눈이 치워지고 활주로가 모습을 드러내자 이틀간 거대한 피난소로 변했던 제주공항은 비로소 활기를 되찾았다. 32년만의 폭설로 운항이 중단됐던 제주국제공항이 44시간 전면통제 상태를 벗어나 25일 오후 2시48분부터 운항이 재개됐다.
공항 대합실 곳곳에 담요와 종이상자를 깔고 누워 있던 2000여명의 체류객은 조금이라도 빨리 돌아가려는 마음에 발권창구 앞을 지키며 짐을 다시 풀었다가 정리하는 등 분주한 모습이었다.
오후 1시를 조금 넘기면서 제주공항에는 체류하던 승객을 비롯해 토요일 결항편 승객, 일요일 및 월요일 운항편 예약 승객 등 6000여명이 한꺼번에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운항이 재개된 뒤 처음으로 이륙한 이스타항공 ZE236편은 승객 149명을 태우고 김포로 떠났다. 오후 3시에는 승객 328명을 태운 747기종의 대한항공 KE1281편이 김포로 출발했다. 이 항공편의 애초 예약률은 80% 수준이었으나 체류객들이 탑승하면서 전 좌석이 찼다.
공항공사 관계자는 “이날 승객 3만9000여명을 이송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바닷길도 다시 열렸다.
제주∼완도를 오가는 2878t급 한일 레드펄호가 이날 오후 3시 승객 365명을 태우고 제주를 떠났고, 제주항 국제터미널에서는 목포로 가는 산타루치노호가 승객 1425명을 태우고 오후 5시 출항했다. 완도로 가는 한일카페리는 975명을 태우고 26일 오전 8시20분 출항할 예정이다. 25일 출항예정인 모든 여객선 예약도 이미 끝났다.
이날 현재 제주에 체류 중인 관광객은 9만명에 가까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25일 밤까지 최대 수송인원은 4만명 정도에 불과해 승객 수송 작업은 26일 이후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상당수 승객은 이날도 공항 대합실에서 밤을 지새웠다.
사상 초유의 공항 노숙사태가 3일째 이어지면서 이용객들의 불만도 가중됐다.
친구들과 함께 졸업여행을 온 원모(25·서울)씨는 “즐겁게 시작된 제주여행이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면서 “공항에서 체류하는 동안 부모님에게 드리려 구입한 제주산 옥돔이 다 상해버린 거 같아 속상하다”고 말했다.
현재 제주도와 한국공항공사 등 유관기관들은 공항에서 체류객들에게 음식물·생수·의료용품·모포 등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등 총력 대응했지만 수천명이 한꺼번에 몰려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체류객들을 위해 제주 사람들이 무료로 숙박과 숙식을 제공하는 미담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이날 오후 페이스북 등 SNS에는 ‘25일에도 공항에서 밤을 지새워야 하는 체류객을 위해 우리 집을 내주겠다’ ‘공항까지 직접 데리러 가겠다’는 식으로 떠나지 못한 승객들을 따뜻하게 맞이하겠다는 글들이 올라왔다.
방송인 허수경씨도 쌍화탕 1000병을 공항에 가지고 와 대기 승객들에게 나눠줬고, 이름을 밝히지 않은 식당업체에서는 직접 만든 도시락을 공항에서 제공하기도 했다.
제주=주미령 기자 lalij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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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1-25 21:41 수정 2016-01-26 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