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형 드라마 “내가 제일 잘 나가∼”

입력 2016-01-27 04:00
지난해 시청률 대박을 터뜨린 예능형 드라마들이다. 왼쪽부터 신원호 PD·이우정 작가의 ‘응답하라 1988’, 우리나라 최초 시즌제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 시트콤 ‘하이킥’ 시리즈를 썼던 조성희 작가의 ‘그녀는 예뻤다’, ‘개그콘서트’를 히트시킨 서수민 PD의 ‘프로듀사’. tvN·MBC·KBS 제공

‘셜록’ ‘한니발’ ‘하우스 오브 카드’ ‘닥터 후’ ‘CSI’ ‘위기의 주부들’ ‘그레이 아나토미’ ‘본즈’ ‘슈퍼 내추럴’…. 대표적인 미국·영국 드라마(미드·영드)들이다.

공통점이 있다. 시즌제로 방송이 이어져 왔고, 한 시즌을 관통하는 굵직한 ‘사건’이 있지만 매회 에피소드 하나가 마무리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드라마에 흐르는 서사 못잖게 에피소드와 캐릭터가 중요하다. 첫 시즌에 출연했던 배우 대부분이 같은 역을 계속 맡는다.

하지만 미드나 영드의 제작 환경은 우리나라에선 쉽게 따라가기 힘든 시스템이다. 엄청난 자본이 투입되고 작품 하나에 작가만 수십 명인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처럼 물량 공세를 퍼부을 수 없다. 무엇보다 첫 시즌에서 주인공이었던 배우의 스케줄이 다음 시즌까지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일일극’ ‘연속극’ ‘미니시리즈’ ‘대하드라마’처럼 한 번 방송되고 끝나는 드라마가 대부분이다. 이런 드라마들에는 서사가 중요하다. 등장인물들의 얽히고설킨 관계, 각자의 사정과 갈등이 서사를 만든다. 다음 편을 궁금해 하도록 만들기 위해 가장 극적인 장면에서 화면을 멈추고 ‘다음 이 시간에’를 기약하는 식이다.

그런데 최근 달라지고 있다. 이른바 ‘예능형 드라마’가 인기를 얻으면서부터다. 일각에선 “예능형 드라마는 드라마가 아니다”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하지만 ‘응답하라 1988’(응팔)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이런 유형의 상승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짧은 호흡, 강렬한 캐릭터, 부담 없는 이야기=최근 성공한 예능형 드라마는 ‘응답하라’ 시리즈, 14번째 시즌까지 온 ‘막돼먹은 영애씨’(이상 tvN), KBS ‘프로듀사’, MBC ‘그녀는 예뻤다’ 등이다. 모두 예능 프로그램 출신 PD 또는 작가의 작품이다.

예능형 드라마가 가진 가장 큰 특징은 호흡이 짧고 캐릭터가 강렬하다는 데 있다. 서사보다 캐릭터에 힘을 싣는다. 이야기를 따라가기에 부담이 없고 작품에 대한 충성도는 높아졌다. 스낵컬처에 익숙한 10∼30대들의 정서와 잘 맞는다.

예능 출신 조성희 작가가 집필한 ‘그녀는 예뻤다’는 미니시리즈 공식에 충실한 편이었지만 나머지 작품들은 다양하게 변주를 줬다. KBS 예능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을 함께 만들었던 신원호 PD·이우정 작가의 ‘응답하라 시리즈’는 미드나 영드의 전개 방식과 가장 비슷하다. ‘여주인공 남편 찾기’라는 큰 줄기가 있고 매회 ‘떡밥’이 조금씩 등장한다.

굵직한 이야기를 받쳐주는 것은 소소한 에피소드들이다.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한 편만 보더라도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응팔의 에피소드마다 붙은 제목 ‘굿바이 첫사랑’ ‘세 가지 예언’ ‘당신이 나에 대해 착각하는 한 가지’ 등을 보면 하려는 이야기도 짐작된다. ‘프로듀사’는 ‘개그콘서트’를 정상에 올려놓은 서수민 PD의 첫 드라마였다. 프로듀사 성공 이후 KBS는 ‘예능 드라마국’을 신설했다. 예능 드라마국의 첫 작품은 아니지만 설 특집으로 예능 드라마 ‘기적의 시간: 로스 타임’이 준비돼 있다.

촘촘한 이야기 모아놔도 헐렁해지는 완성도=하지만 예능형 드라마는 완성도가 약하다는 비판을 꾸준히 받고 있다. 한 드라마 PD는 26일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건 스토리다. 잘나가는 예능형 드라마가 엉성한 서사 구조를 극복하지 못하고 용두사미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드라마에 대한 가벼운 접근이 작품성 측면에서 바람직한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프로듀사나 응팔도 기승전결이 약했다는 게 큰 약점으로 꼽혔다. 응팔의 핵심 스토리였던 ‘덕선의 남편 찾기’는 시청자들을 충분히 설득시키지 못하고 끝났다. 매회 에피소드가 강조되다보니 에피소드 별로 완성도 높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으나 한 편의 드라마로써는 부족했다는 것이다.

한 예능 PD는 “반응이 즉각적인 예능 프로그램으로 훈련된 예능 작가와 PD들은 에피소드 하나를 재밌고 충실하게 만드는 감각이 있다”면서 “드라마 경험이 많지 않다보니 기승전결 완성도가 약한 측면이 있지만, 예능 드라마가 계속 나오다보면 완성도도 점차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