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봄 결혼과 함께 서울 노원구 월세에 신혼집을 차렸던 회사원 홍모(34)씨는 두 달 뒤 태어나는 2세를 대비해 전셋집을 구하기로 했다. 출퇴근과 자녀 교육을 생각하면 서울 내에서 새 집을 구하고 싶지만 천정부지로 치솟은 전셋값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이에 주말인 지난 23일 하루 종일 현재 거주하는 곳과 가까운 경기도 구리를 돌아다니며 발품을 팔았다. 한파를 뚫고 부동산공인중개소 15곳을 돌아다녔지만 전세매물은 없고 그나마 나와 있는 매물도 아예 집을 사는 게 나을 정도로 비쌌다. 홍씨는 “전세난이 심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경기도까지 전셋집이 없을 줄은 몰랐다”며 “출산 전에 집을 구하고 싶은데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봄 이사철을 앞두고 전세를 구하기 위한 세입자들의 경쟁이 수도권 곳곳에서 전쟁 수준으로 진행 중이다. 작년 한 해 서울을 떠난 ‘전세난민’들이 이주하면서 경기권 전세도 씨가 마른 상황이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M공인중개소 관계자는 25일 “지난 주말 동안 서울에서 전세를 구하러 왔다는 손님 수십명이 다녀갔다”며 “전세매물이 나오면 1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바로 계약이 체결된다”고 전했다.
이미 수도권의 전세난이 한계 상황에 직면했지만 올해는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파트 입주물량이 대폭 줄어든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부동산인포에 따르면 2015년 하반기 5만7640가구였던 수도권 입주물량이 올해 상반기 4만6504가구로 1만 가구 이상 감소한다. 서울과 인천의 물량이 다소 늘기는 하지만 경기도에서만 무려 1만4810가구, 작년과 비교하면 32.8%가 줄어드는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는 세입자들이 ‘내 집 마련’에 나서면서 전세난이 다소 완화됐다. 하지만 올해는 매매심리가 위축돼 전세난을 다시 부채질할 가능성이 높다. 대출규제가 강화되고 미국발 금리인상 소식까지 들려오는 와중에 공급과잉으로 집값이 떨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다. 지난 22일 기준 1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3959건으로 하루 평균 180건 정도 거래가 이뤄졌다. 지난해 1월 6824건이 거래돼 하루 평균 220건 거래된 것과 비교하면 18% 감소한 거래량이다.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지난해 11월부터 이달까지 3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이어진 서울 강남발 재건축 이주수요가 전세난을 더욱 부추길 것으로 관측된다. 올해 상반기 예정된 강남권 재건축 이주수요만 1만 가구 이상으로 추산된다. 개포주공 3단지 1160가구, 고덕주공 5·7단지 1780가구, 서초구 잠원동 한신 18·24차 440가구 등이 잇따라 이주를 계획하고 있다. 서울 송파 C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작년에는 세입자들에게 매매를 권하거나 경기도 집을 알아보라고 했지만 올해는 드릴 말씀이 아예 없다”며 “수도권의 전세난이 역대 어느 때보다도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
“매물 보는 게 임자”… 수도권 전세난 ‘최악’ 기록 다시 쓴다
입력 2016-01-25 2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