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일베’에 빠진 중고생 ‘思考 일탈’… 경기교육청, 첫 설문조사·심층면접

입력 2016-01-25 17:33

세월호 유가족의 농성장을 찾아 폭식 투쟁을 벌이고, 회원인 고교생이 종북 논란 인사에게 황산 테러를 저지르는 등 극단적 활동으로 충격을 준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여성 비하는 물론 호남 격하 등으로 반(反)사회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일베의 은어를 무비판적으로 쓰거나 일베 주장에 동조하는 중·고생들이 남학생을 중심으로 늘고 있다.

경기도교육청 산하 경기도교육연구원이 시대정신연구소와 함께 지난해 9월 남녀 고교생 715명을 설문조사하고 중·고생, 교사, 전문가에 대한 심층면접을 실시한 결과에서도 이 같은 현상이 발견됐다. 교육청 차원에서 일베에 대한 연구를 체계적으로 진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민일보가 25일 입수한 경기도교육연구원의 ‘중·고등학생의 맹목적 극단주의 성향에 대한 연구-일베 현상을 중심으로’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조사에 응한 학생 대부분이 ‘일베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90.8%)거나 ‘글을 올린 적이 없다’(96.4%)고 답했다. 또 일베에 올라온 글에 대해 응답자의 절반가량(47.4%)은 ‘억지스러운 내용’이라고 평가했고, ‘조금 과장돼 있다’는 응답도 20.2%에 달했다.

그러나 일베를 알고 있는 학생은 92.5%에 달했으며 주변 친구들이 일베에 빠져 있는지를 묻는 질문엔 30.0%가 ‘그렇다’고 답했다.

친구가 일베에 빠져 있다는 의견은 남학생(38.9%), 성적 상위 학생(42.8%), 경제 수준이 높은 응답자(41.0%)일수록 상대적으로 많았다. 또 ‘일베 내용이 어느 정도 맞다’는 응답도 성적이 상위권이고 경제 수준이 높은 학생들이 각각 30.2%와 30.0%에 달해 평균보다 비중이 높았다.

심층면접에서도 학생들은 일베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해 자신과 연관 없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친구들 사이에선 일베 현상이 만연돼 있다고 고백했다. 고1 남학생은 “통상 50%가 안 되지만 우리 반은 80% 정도가 일베에 동조한다”고 전했다. 특히 일베 용어를 학생들 대부분이 인지하고 있었지만 교사나 부모에게는 사용하지 않고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은어처럼 사용하는 경향도 뚜렷이 나타났다.

시대정신연구소 엄경영 대표는 “학교에서 배운 내용과 무관한 것들을 일베에서 학습한 학생들이 문제가 있다는 인식에도 불구하고 일베 용어 등을 쓰면서 우월감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른바 일베 현상이 나치즘 같은 맹목적 극단주의로 발전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심층면접에 참여한 전문가는 “여성 등을 무임승차하는 집단으로 규정해 비하하면서 개인적인 박탈감을 풀려는 현상은 결국 극단주의 성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