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를 위해 총 대신 재봉틀을 잡았다… 케이트 윈슬렛 주연 우아한 복수극 ‘드레스메이커’

입력 2016-01-27 04:05
영화 ‘드레스메이커’에서 패션디자이너 틸리 역을 맡은 케이트 윈슬렛이 우아하게 차려입고 25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리틀빅픽처스 제공
극 중 윈슬렛이 만든 의상을 입고 포즈를 취한 마을 사람들. 리틀빅픽처스 제공
영화 ‘타이타닉’(1997)에서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호흡을 맞춘 케이트 윈슬렛(41). 석양 무렵 뱃머리에서 디캐프리오와 양팔을 벌리고 포즈를 취하는 장면으로 ‘영원한 연인’이 됐다. 다소 뚱뚱해 보이던 윈슬렛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건강미 넘치는 여배우로 성장했다. ‘이터널 선샤인’(2005)으로 인상을 남긴 그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2009)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이후 잠잠해지는가 싶었더니 신작 ‘스티브 잡스’로 올해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2월 28일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의 여우조연상 후보에도 올라 수상의 영광을 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윈슬렛은 ‘스티브 잡스’에서 독재자 스타일의 잡스를 따뜻하고 인간적으로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전 매킨토시 마케팅 이사 조애나 호프먼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윈슬렛의 매력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2월 11일 개봉되는 ‘드레스메이커’에서 패션디자이너 틸리를 맡았다. ‘패션은 우아하게 복수는 화려하게’라는 홍보문구가 붙은 영화는 25년 전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억울하게 쫓겨났던 틸리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틸리는 화려한 드레스 선물로 자신을 경계하는 사람들의 환심을 얻는다.

그동안 엄마를 돌봐준 테디(리암 햄스워스)와 새로운 사랑도 만들어간다. 그러면서 과거의 살인사건 뒤에 숨겨져 있던 비밀을 하나하나 캐낸다. 마을 사람들은 틸리의 행동에 의구심을 드러내면서도 그가 만든 의상에는 솔깃해한다. 총 대신 재봉틀을 통해 화려한 복수가 시작된다. 어린 시절의 상처와 복수라는 주제를 윈슬렛의 연기 변신과 더불어 웃음과 반전으로 버무렸다.

윈슬렛은 재봉틀을 비롯해 소품을 직접 구하러 다니고 바느질을 배우는 등 완벽한 틸리를 연기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처음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어떻게 틸리를 연기해야 할지 알 수 있었다. 그녀가 가진 강인함과 당당함에 반했다”며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화려한 색감과 우아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1950년대 스타일의 드레스는 윈슬렛에게 더 없이 잘 맞았다.

‘드레스메이커’는 문학교수이자 호주 대표 여성작가 로잘리 햄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삼았다. 가상의 마을 던가타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드레스로 복수한다는 스토리다. 원작자 햄은 실제로 재봉사였던 자신의 어머니를 모델로 틸리 캐릭터를 완성했다. 여성감독 조셀린 무어하우스는 각본과 연출을 맡아 원작과는 또 다른 매력의 새로운 복수극을 내놓았다.

원작의 문학성에 여성감독 특유의 섬세한 연출력이 더해진 영화는 제40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후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되며 주목을 받았다. 제5회 호주영화협회상 12개 부문 후보에 올라 윈슬렛이 여우주연상을, 엄마 몰리 역의 주디 데이비스와 틸리를 돕는 경찰 패럿 역의 휴고 위빙이 각각 남녀조연상을 수상했다.

각 캐릭터에 맞는 의상을 위해 총 350벌이 제작됐다. 이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옷은 풋볼 경기 장면에서 윈슬렛이 입은 레드 드레스다. 틸리의 화려한 귀환을 선포하는 동시에 앞으로 벌어질 사건의 시작을 알리는 의상이다. 틸리가 만든 드레스를 입고 미모를 뽐내는 프랫 역의 사라 스누크는 극적인 변화를 위해 체중을 10㎏ 찌웠다가 다시 5㎏ 뺐다.

여성들의 옷 속에 가려져 있는 몸매에 호기심을 갖는 남자들의 시선, 가난하고 편부모 가정의 자녀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편견, 한국에만 해당되지 않는 학교에서의 왕따 등 갖가지 사회 부조리를 무겁지 않고 유머 있게 적시하는 영화다. ‘샤인’ ‘엘리자베스’의 테마곡을 작곡한 허쉬펠더의 감성적인 음악이 영화의 분위기와 잘 어우러진다. 12세 관람가. 122분.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