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청춘 찬양 사역에 바치렵니다”… 차세대 CCM 이끌 찬양 사역자 김관호·양기준

입력 2016-01-26 19:55

청년들이 교회를 떠난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교회 안에는 ‘살아있는’ 청년들이 많다. 한국교회와 다음세대를 세우기 위해 자기 달란트를 쓰는 이들이다. 아름다운 ‘목소리’와 음악적 재능을 가졌다. 오늘도 청소년을 만나고, 타국에서 찬양을 부른다.

각각 한국의 ‘힐송그룹’과 케이씨씨엠(K-CCM)을 만들기 원하는 찬양사역자 김관호(32)와 양기준(37)씨를 최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민일보에서 만났다. 둘 다 대중가수로 출발한 싱어송라이터이다.

김관호 “한국의 ‘힐송그룹’ 만들고 싶다”

김씨는 지난해 가을 한 케이블방송의 음악 프로그램 ‘너의 목소리가 보여(너목보)’에 출연해 ‘감성 전도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너목보에 나가기 전에 슈퍼스타K(슈스케)에서 출연 제안이 먼저 있었어요. 근데 그땐 나가고 싶은 맘이 크게 없었어요. 그런데 지난해 너목보 출연 제안 때는 나가고 싶었어요. 마침 월·화·목요일 안양대 신학대학원 수업이 있는데 너목보 녹화가 수요일이라고 하고….”

그는 2004년 그룹 ‘부활’에서 1년여 동안 노래를 불렀던 경력이 있었다. 그의 목소리를 기억하는 방송 측에서 먼저 섭외요청을 했던 것이다. “사실 저는 음치에 박치였어요.” 김씨는 중1 때까지 그림을 그렸지만 외환위기 후 부친의 사업체가 부도나면서 포기했다. “집이랑 가구랑 다 경매에 넘어가고 오디오 한 대만 딱 건졌어요. 지하 단칸방에서 그 오디오로 노래를 많이 들었죠.”

그는 청소년기에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 “얼굴에 여드름이 많았어요. 친구들이 놀렸죠. 차비가 없어서 버스 10정거장 거리를 걸어 다녔어요. 밥은 거의 굶다시피하고. 제가 떡볶이를 참 좋아해요. 배고플 때 그 떡볶이가 너무 먹고 싶어서 분식점 주변을 맴돌곤 했거든요.” 김씨는 희미하게 웃었다. 외롭고 배고픈 소년의 모습이 그의 노래에 담겨 있는 것도 같다.

그런 그에게 음악이 유일한 위로였다. 고교 3학년 때 하루 10시간씩 맹렬하게 연습했다. “‘제게 목소리를 주시면 음악 목사가 돼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팝가수 브라이언 맥나이트 가사집을 구해 책 제본이 뜯어질 때까지 불렀어요.” 2004년 부활 활동 후 소속사 4곳 옮겨 다니며 음반 2장을 냈다. “유명하게 해달라고 기도한 게 아니라서 그랬는지 뜨진 않았어요(웃음).”

그는 군악대에서 군복무를 마친 뒤 2011년 기독교현대음악(CCM)을 시작했다. 서울 광화문 거리에서 공연을 하다 ‘커피소년’이라 불리는 가수 노아람(35)을 만났다. 김씨는 노아람씨로부터 그의 아버지이자 1세대 찬양사역자인 아버지 노문환(65) 목사를 소개 받았다. 노 목사의 권유로 일본과 중국 교회로 가 찬양을 하게 됐다.

매년 서너 차례 일본 교회에 간다. “제가 외롭고 힘들 때 아무도 ‘괜찮니?’ ‘힘들지?’ 말을 해주지 않았어요. 힘든 청소년들을 보듬어 ‘힘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돌아보니 어린 시절 가난과 외로움이 제게 선물이 됐어요. 하나님 일을 할 수 있도록 한.” 그는 장기적으로 호주의 ‘힐송’그룹과 같은 커뮤니티를 세워 찬양하고 청소년 사역을 하길 원한다.

양기준 “케이팝처럼 ‘K-CCM’ 만들겠다”

양씨는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노래 잘 부르는 소년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저희 교회가 소속된 교단 노회에서 하는 경연대회에 나가 2등을 했어요. 제가 무슨 곡을 부른 줄 아세요? 다윗과 요나단의 ‘쓴 잔’. 하하. 그때만 해도 제가 귀여워서 어른들이 상 주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니었다. 이듬해 문화체육부장관 배 청소년가요제 나가 대상을 받았다.

고교 3학년 때 EBS 청소년가요제에 출전해 입상했다. 가수 이소은이 이 가요제 수상자다. “대중음악을 통해 하나님을 증거하고 싶었어요.” 1999년 남성그룹 ‘I2I(아이투아이)’ 메인보컬로 데뷔한 양씨는 이듬해 영화 ‘짱’의 타이틀 곡을 불렀다. 아이돌 가수였다. 2004년 혼성그룹 ‘리트머스’의 보컬로 활동했다. 리트머스는 미국 동요 ‘할아버지 시계’를 번안한 곡으로 제법 유명해졌다.

하지만 소속 기획사의 재정난으로 그룹이 해체됐다. “이제 끝이라고 생각하니 가만히 있어도 바들바들 몸이 떨리고 식은땀이 났죠. 꿈이 사라졌다고 생각했어요.” 2007년 쯤 집으로 돌아오던 8차선 도로 옆 인도 위에서 환상을 봤다. “제가 수 천 명 앞에서 기타를 메고 찬양을 하는 거예요.” 그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서원했다. 이젠 하나님만 노래하겠다고. 2008년 첫 CCM 음반 ‘러브 코리아(Love Korea)’를 내고 3년 동안 여러 찬양집회를 찾아 다녔다. “각종 교회나 단체의 수련회가 열린다고 하면 주최 측에 전화를 걸었어요. ‘신인 찬양사역자입니다. 제게 10분만 주십시오.’ 반 정도는 거절하고 반 정도는 허락해주셨어요. 정말 기타 하나 메고 여러 수련회 무대에 서서 제 얼굴을 알렸어요.”

그러나 찬양을 하고 싶어도 오라는 곳이 많지 않았다. “‘하나님께 왜 설 곳이 없습니까’라고 기도하던 중 그런 마음을 주시더군요. ‘왜 국내에서만 하려고 하는냐. 해외로 가라.’ 그래서 해외 교회로 가가게 됐어요.” 대중가수로 활동한 게 큰 도움이 됐다. “2010년 ‘할아버지 시계’가 SBS 드라마 ‘그대 웃어요’에 삽입됐어요. 그럼 대중가요와 찬양을 함께 부를 수 있잖아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어요.”

그는 케이팝(외국에서 불리는 한국 대중가요)처럼 K-CCM(외국에서 불리는 한국 CCM)이 유행할 수 있다고 본다. “2014년 케이팝 싱글로 ‘내 사랑이니까’를 발매했어요. 제가 대중가수 시절 불렀던 가요가 좋은 선교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는 개척교회와 미자립교회가 자기와 같은 찬양사역자를 많이 불러주길 바란다. “저는 하나님을 위해 달란트를 쓰기 원합니다. 언제든 불러주세요.” 문의는 홈페이지(club.cyworld.com/ccmyang).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