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유가 악몽’은 계속된다… 1990년대 ‘장기 저유가 시대’ 다시 오나

입력 2016-01-26 04:00



이 정도면 ‘역(逆)오일쇼크’다. 너무 낮은 국제유가가 중국 리스크(경기 둔화 우려와 증시 폭락)와 함께 글로벌 금융시장을 쥐고 흔들고 있다. 배럴당 20∼30달러대로 추락한 유가는 어디까지 떨어지고 언제쯤 반등할 수 있을까. 국제 원유시장의 공급 과잉을 해소할 만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아 1990년대와 같은 장기 저유가 국면이 재연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20달러 중·후반이 바닥”=국제유가의 기준이 되는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지난 20일에 2003년 5월 이후 가장 낮은 배럴당 26달러대로 주저앉았다가 22일 32달러 선까지 회복했다. 하지만 미국·유럽의 폭설과 한파로 인한 난방유 수요 증가 전망 덕분에 오른 것이어서 본격적인 반등 신호로 보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석유값이 계속 오르지는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US뱅크 웰스매니지먼트의 롭 하워스 연구원은 “공급 과잉과 수요 부진으로 당분간 유가가 낮은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국은행은 연평균 국제유가가 지난해 배럴당 52.4달러에서 올해 40.8달러로 12달러 정도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란의 원유 수출 재개와 미국 달러화 강세가 유가 하락을 부추길 요인으로 꼽혔다.

하이투자증권 박상현 연구원은 “유가 사이클이 90년대와 같은 장기 저유가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유가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치는 달러와 미국 기준금리 사이클이 90년대와 유사하고, 글로벌 경기 사이클과 원유시장의 공급 쇼크 상황도 당시와 비슷하다는 이유에서다.

91∼99년 실질 유가는 평균 12.7달러였다. 당시 달러는 초강세였고 미 금리는 90년대 중·후반에 인상됐다. 또 90년대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결속력이 급격히 약화되면서 원유 생산이 크게 늘었다. 모두 현재 상황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박 연구원은 “이런 요인들과 중국 경제의 체질 변화(구조조정 리스크)를 감안하면 유가가 장기 약세 사이클에 들어설 여지가 많다”며 20달러 중·후반을 저점으로 박스권 내 등락을 거듭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신흥국 경제의 타격이 커서 일부 기업들의 도산 리스크가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가장 큰 문제는 저유가가 예전처럼 세계 경제에 전반적으로 득(得)이 되기보다는 금융시장 불안을 비롯한 해(害)가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유가가 떨어지면 기업의 생산비용이 줄어 공급이 늘어나는데, 지금 세계 경제는 늘어나는 공급을 소비할 여력이 부족하다. 이에 저유가가 디플레이션 공포를 부채질한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는 저유가가 2년째 이어지고 있는데도 미국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소비보다 저축을 많이 해 돈이 돌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언제, 왜 오르고 내렸나=영국 석유회사 BP에 따르면 유가는 70년대 초반까지 수십년 동안 배럴당 2달러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다 1·2차 오일쇼크로 급등했다. 73년 4차 중동전쟁 때 아랍 산유국들이 석유를 무기화하면서 대량 감산을 단행했다(1차 오일쇼크). 73년 3달러였던 유가는 74년 12달러로 치솟았다. 이후 78년 말 이란의 내부 혼란과 79년 초 이슬람혁명을 계기로 2차 오일쇼크가 일어나 유가는 30달러대로 뛰었다. 80년대 중반에는 급락을 경험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시장점유율을 높이려 증산에 나선 탓이다. 85년 28달러였던 유가는 이듬해 14달러로 반 토막 났다.

이후 90년대 내내 박스권에 갇혔다가 2000년대 들어 고유가 국면으로 전환됐다. 세계 경기 호황에 힘입어 2003년 29달러, 2005년 55달러, 2007년 72달러로 매년 큰 폭으로 올랐다. 2008년 7월 WTI 선물가격이 147.27달러를 찍으며 배럴당 100달러 시대가 열렸다. 중국·인도 등 개발도상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떠오르면서 수요가 늘었고, 비(非)OPEC 국가의 석유 생산은 줄면서 급등했다.

하지만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사태를 계기로 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지면서 석유 수요도 급감했다. 그해 7월 135달러였던 브렌트유 가격은 6개월 뒤 40달러 선으로 추락했다.

금융위기 이후 각국이 경기부양책을 펴서 막대한 돈이 풀리자 유가도 반등하기 시작했다. 특히 2010년 말 시작된 ‘아랍의 봄’(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확산된 반정부 시위) 여파로 아랍 산유국들의 공급이 차질을 빚으면서 유가는 2011년 111달러, 2012년 112달러로 고공행진했다.

수년간 지속되던 유가 100달러 시대는 2014년 말부터 끝났다. 미국에서 촉발된 ‘셰일 혁명’(셰일오일·가스 생산 확대)에 맞서기 위해 나머지 산유국들도 생산을 늘렸다. 이렇게 공급은 늘었지만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수요가 줄어 가격이 계속 떨어졌다. 올해 들어선 이란의 원유 수출 재개 요인까지 추가됐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