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컨슈머리포트-설 특집 ② 떡국상 반찬 포기김치] 균형감 좋고 향미 뛰어난 종가집·농협 나란히 1등
입력 2016-01-26 04:25 수정 2016-01-26 17:09
영화나 드라마에서 때로는 주연보다 조연이 빛날 때가 있다. 훌륭한 연기력이나 독특한 개성으로 주연 이상으로 빛나면서 ‘장면을 훔치는 사람’들, 이른바 ‘신 스틸러(scene stealer)’다.
새해 첫날 정성스럽게 차린 떡국상에 오른 배추김치도 빛나는 조연이 아닐까 싶다. 매콤한 맛의 빨간 배추김치는 떡국의 깊은 맛을 더욱 돋워주는 조연 구실을 톡톡히 해낼 것이다.
예전 같으면 마당 한쪽에 묻어둔 장독들, 그중에서도 설날 아침상을 위해 한번도 열지 않고 갈무리해둔 독에서 꺼내온 배추김치가 떡국상에 올랐을 것이다. 요즘은 김장을 해도 장독 대신 김치냉장고에 보관한다. 아예 김장을 하지 않는 가정들도 크게 늘고 있다. 슈퍼마켓에만 가면 온갖 김치들이 즐비하니 그때그때 입맛에 맞는 김치들을 사다 먹는 가정이 적지 않다.
설날 아침 떡국상에도 슈퍼마켓에서 사온 김치를 내놓을 가정들을 위해 국민컨슈머리포트는 설날 특집 두 번째 품목으로 포장 배추김치를 선택했다.
◇상위 5개 브랜드 포장 배추김치 평가=농협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상품김치 시장은 1조2000억원대에 이른다. 그중 가정용은 3000억원 수준이다. 시장조사기관 링크아즈텍에 따르면 가정용 포장 김치 시장의 선두는 6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대상FNF ‘종가집’(64%)이다. 2위는 CJ제일제당이지만 점유율은 크게 떨어져 9% 수준이다. 동원F&B, 풀무원, 농협, 대형마트의 PB 김치들이 뒤를 잇고 있다.
시장점유율 1위인 종가집은 30여 가지의 김치를 내놓고 있다. 포기김치부터 저나트륨 김치, 계절 김치, 각 지역김치까지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나머지 브랜드들도 다양한 김치를 선보이고 있다.
종가집 등 5개 브랜드 마케팅팀에 떡국이나 떡만둣국에 가장 잘 어울릴 만한 배추김치를 추천받았다. 종가집은 ‘오래오래맛있는포기김치’(1.9㎏·1만6900원), CJ는 ‘비비고 궁중배추김치’(2㎏·2만4900원), 동원F&B는 ‘익을수록깊은맛이나는양반김치’(2.2㎏·1만1500원), 풀무원은 ‘서울반가김치’(1.9㎏·1만6900원), 농협은 ‘아름찬포기김치’(1㎏·8980원)를 각각 추천해 왔다.
포장 배추김치는 숙성도와 보관방법·시간 등에 따라 맛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 제품이어서 각 사 마케팅팀의 지원을 받기로 했다. 평가 당일인 지난 21일 마케팅팀에서 직접 택배를 이용해 자사의 제품을 평가 장소인 서울 광진구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로 오후 3시까지 보내왔다. 워커힐 호텔 홍보팀이 제품을 받아 냉장보관했다. 평가는 오후 4시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 내에 있는 ‘수펙스 김치연구소’에서 이뤄졌다. 1989년 설립된 수펙스 김치연구소는 김치의 맛과 영양을 연구하고 있는 김치전문연구소로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 부설기관이다. 공정한 평가를 위해 포장지에서 배추김치를 꺼내 반 포기씩 접시에 담아냈다.
평가는 ‘수펙스 김치연구소’ 이선희 조리장, 김영석 부조리장, 신순덕 수석 셰프, R&D팀 이종섭 셰프, 그리고 워커힐 호텔 한식당 ‘온달’의 김성완 부조리장이 맡았다. 이번 김치 평가는 김칫소의 양과 색감 등을 살펴보는 모양새, 김치 특유의 향을 점검하는 향미, 배추의 품질과 절임 상태를 평가하는 조직감, 김치 맛을 좌우하는 두 가지 맛인 단맛과 짠맛의 조화 정도, 매운 맛을 평가했다. 5가지 기본항목 평가를 기준으로 1차 종합평가를 하고, 재료를 공개한 뒤 이에 대해 평가했다. 가격을 밝힌 다음 최종 평가를 진행했다. 모든 평가는 제일 좋은 제품에는 5점, 상대적으로 제일 떨어지는 제품에는 1점을 주는 상대평가로 진행됐다.
◇값비싼 궁중김치, 떡국과는 어울리지 않아=접시에 담긴 김치들을 살펴본 이 조리장은 “김치 숙성도가 제각각이어서 객관적인 평가가 매우 어려운 상태”라면서 “숙성도를 감안해 평가하겠다”고 밝혔다. 평가자에게 제공된 김치는 제조일이 12월 31일부터 1월 18일까지 보름 이상 차이가 났다. 이 조리장은 “마켓에서 김치를 구입할 때 제조일자를 눈여겨봐야 한다”면서 “잘 익은 김치를 좋아한다면 제조일로부터 2주 정도 지난 제품을 구입하라”고 귀띔했다.
평가자들은 김치의 모양새를 살피고 냄새를 맡으며 향미를 점검한 뒤 5개 브랜드의 김치 잎과 줄기를 잘라 맛을 봤다. 맛이 섞이는 것을 막기 위해 중간중간 물을 마셔가며 신중하게 맛을 본 평가자들은 “대부분 김치에 조미료가 들어간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재료 표시에는 향미증진제나 글루타민산나트륨 등 조미료가 없었다. 이 조리장은 “김치 담글 때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액젓에 이미 조미료가 들어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평가 결과 종가집 김치와 농협 김치가 최종평가점수 5점 만점(이하 동일)에 4.0점, 동점으로 1위에 올랐다. 이번 평가 대상 중 점유율이 제일 낮은 농협김치(12월 31일 제조)는 향미(4.0점), 조직감(3.4점), 단맛과 짠맛의 조화(4.2점), 매운맛(3.8점)을 비롯해 1차 종합평가(4.2점), 재료평가(3.2점)에서도 최고점을 받았다. 모양새(3.0)와 떡국과 어울리는 김치(4.0) 항목에서만 1위 자리를 내줬다.
농협김치에 대해 이종섭 셰프는 “잘 숙성된 맛이며 전체적인 균형이 좋지만 약간 거친 고춧가루가 들어가 모양새와 질감이 거칠어 아쉽다”고 평했다. 농협김치의 점유율이 낮은 것은 판매처가 하나로마트로 국한되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시장 점유율이 제일 높은 종가집 김치(1월 13일 제조)는 모양새(4.2점)와 단맛과 짠맛의 조화(4.2점)에서 최고점을 받으면서 체면을 지켰다.
3위는 최종평점 3.4점을 받은 동원 김치(1월 18일 제조)가 차지했다. 조직감(3.4점)에서 최고점을 받았으며, 풍부한 맛으로 떡국과 어울리는 최고의 김치(4.4점)로 뽑혔다. 신순덕 셰프는 “소도 골고루 잘 들어 있고 칼칼하게 매운맛도 좋다”면서 “떡국이나 칼국수와 먹기 좋은 김치”라고 평가했다.
4위는 풀무원 김치(1월 15일 제조)였다. 최종평점 2.4점. 향미(2.1점), 조직감(2.4점), 단맛과 짠맛의 조화(1.4점)에서 최저점을 받았다. 건강한 맛을 강조하는 풀무원 김치에 대해 셰프들은 ‘지나치게 싱겁다’고 입을 모았다. 김영석 부조리장은 “싱거워서 단맛이 강조되고, 채소를 너무 잘게 썰어 지저분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시장점유율 2위인 CJ 비비고 김치(1월 7일 제조)가 꼴찌를 했다. 최종평점은 1.2점. ‘조선조 임금님의 밥상에 오르던 김치를 재현했다’는 궁중김치는 곱게 빻은 고춧가루를 넣어선지 색감이 떨어져 모양새(1.6점)에서 최저점을 받았다. 또 매운맛(1.6점)과 떡국과 어울리는 김치(2.0점)에서도 최하위였다. 이번 평가 대상 김치 중 제일 비쌌던 CJ 김치는 가격 공개 후 점수가 더 떨어졌다. 제일 싼 동원김치보다 2.4배나 비쌌다. 김성완 부조리장은 “빛깔이 너무 연하고, 부재료들이 적어 부실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 조리장은 “젓갈을 많이 넣지 않아 숙성할수록 시원한 맛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