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청년의 ‘썰매 우생순’ 얼음 위에 꽃을 피우다… 원윤종·서영우 아시아 첫 봅슬레이 월드컵 金

입력 2016-01-24 22:20 수정 2016-01-24 22:24
한국 봅슬레이의 희망 원윤종(왼쪽)과 서영우(오른쪽)가 23일(한국시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휘슬러 경기장에서 열린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 월드컵 5차 대회에서 아시아 선수 최초로 금메달을 딴 뒤 시상식에서 최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맬컴 로이드 대표팀 코치의 부인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 제공
원윤종(앞)-서영우가 결승선을 통과하며 코치진과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있는 모습.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 제공
2009년 TV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봅슬레이 대표팀 선발전이 방송을 탔다. 당시 봅슬레이의 현실은 암울했다. 국내에 제대로 된 경기장이 없어 일본에서 대표팀 선발전이 치러졌다. 선발전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단출한 규모였다. 그러나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썰매 불모지 한국에서 화려한 우승 꽃이 피어날 줄은….

한국 대표팀이 유럽·북미 등 봅슬레이 강국들을 물리치고 대형 사고를 쳤다. 원윤종(31·강원도청)-서영우(25·경기도BS경기연맹)가 23일(한국시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휘슬러 경기장에서 열린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 2015-2016시즌 월드컵 5차 대회에서 1·2차시기 합계 1분43초41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 출신이 봅슬레이 월드컵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처음이다. 앞서 1·2·4차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둘은 마침내 세계 정상의 자리에 우뚝 섰다.

원윤종은 “처음으로 월드컵에서 1등을 해 정말 기쁘지만 아직은 얼떨떨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용 감독은 “세계 여러 코치들도 봅슬레이에 입문한 지 5년 만에 월드컵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한국이 처음인 것 같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5년 전만 해도 이런 성적은 꿈도 못 꿨다. 원윤종과 서영우가 봅슬레이에 입문했던 2010년 국내엔 전용 경기장조차 없었고, 외국 선수들이 타던 썰매를 중고로 사서 연습에 나섰다. 평창에 스타트 훈련장이 만들어지기 전까진 아스팔트 바닥에서 바퀴 달린 썰매로 훈련했다. 이번 성적이 ‘기적’으로 여겨지는 이유다.

둘은 성결대 체육교육과에 다니며 교사를 꿈꾸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우연히 보게 된 ‘국가대표 선발전’ 포스터가 인생을 바꿔 놨다. 무모한 도전의 시작이었지만 묵묵히 실력을 갈고닦았다. 원윤종은 썰매 가속도를 높이기 위해 77㎏이던 체중을 100㎏대까지 늘렸다. 서영우도 하루 8끼를 먹으며 몸무게를 100㎏까지 끌어올렸다.

매일 윗몸일으키기 1000개와 2시간씩 웨이트트레이닝으로 근력을 키우며 스타트 기록도 단축시켰다. 지난해와 비교해 1년 만에 0.1초나 앞당겼다. 스타트에서 0.1초 차이가 나면 최종 기록은 그 세 배인 0.3초가 벌어진다. 0.01초 차이로 승패가 갈리는 봅슬레이에서 0.1초는 그만큼 엄청난 기록이다.

첫해 45위에 그쳤던 이들은 지난 시즌 랭킹을 10위까지 높이며 가능성을 보였고, 결국 이번 대회 금메달을 추가하며 세계 랭킹 1위에 올라섰다. 원윤종과 서영우의 목표는 이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다. 왼쪽 발목에 오륜기 문신을 새긴 서영우는 올림픽을 향한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다.

앞서 21일 5차 대회 준비에 열중하던 둘에게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고(故) 맬컴 로이드(영국) 코치의 부인이 직접 휘슬러로 온 것이다. 로이드 코치는 4차 대회 합류를 앞두고 지난 4일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부인은 이들에게 자신이 특별 제작한 메달을 전달했다. 앞면에는 ‘평창 금메달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라’, 뒷면에는 ‘로이드 코치가 가르쳐준 것을 잘 되새겨 좋은 성적을 거뒀으면 좋겠다’고 적혀 있었다. 메달을 받고 투지를 불태운 둘은 이틀 뒤 사상 첫 금메달을 차지했다. 24일 6차 대회에선 9위에 머물렀다.

한편 스켈레톤 기대주 윤성빈은 월드컵 6차 대회에서 1·2차 시기 합계 1분45초24로 동메달을 따며 세계랭킹 2위로 올라섰다. 앞서 3차 대회 동메달, 4·5차 연속 은메달을 수확했던 윤성빈은 이제 단 한 명만을 앞에 두고 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