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 자영업자를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정책이 정치권의 개입으로 꼬이면서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금융 당국이 주도해 3년마다 수수료율을 재산정토록 한 현 제도에서는 매번 이런 갈등이 생겨날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카드의무수납제’(신용카드 결제를 거부할 수 없도록 한 것) 등 정책 효과를 달성한 제도는 폐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 당국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가맹점 수수료 인하방안의 골자는 영세·중소가맹점의 수수료율을 각각 0.7% 포인트씩 낮추는 것이었다. 카드사들은 금융 당국이 지정한 영세가맹점의 수수료를 낮추는 대신 전체 가맹점의 10% 수준인 약 24만개 일반가맹점의 수수료를 올렸다. 연매출 3억원 이상 일반가맹점의 수수료율은 카드사들이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소상공인연합회 등 자영업자 단체를 중심으로 반발이 커지면서 정치권에서는 카드사들의 카드론 금리까지 들먹이며 일반가맹점 수수료까지 낮추라고 압박했다. 금융 당국도 카드사 현장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가맹점 수수료를 둘러싼 논란이 카드시장 재편에 대한 본질적 고민 없이 수수료를 낮추는 것에만 몰두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특히 카드의무수납제를 영세가맹점의 협상력을 떨어뜨리고 시장 기능을 왜곡하는 대표적인 제도로 꼽았다. 금융연구원 이재연 선임연구위원은 24일 “카드의무수납제를 법으로 규정한 곳은 우리나라밖에 없다”며 “카드수납을 강제로 하다 보니 정부가 영세가맹점을 우대하기 위해 개입하는 상황이 반복된다”고 설명했다.
카드의무수납제의 근거 규정은 여신전문금융업법 19조 1항과 소득세법 162조의 2(시행령 210조의 2) 등이다. 여전법에 따르면 신용카드 가맹점은 신용카드 결제를 거절하거나 신용카드 회원을 불리하게 대우하지 못한다. 소득세법은 직전 연매출 2400만원 이상 사업자는 신용카드 가맹점으로 의무가입하도록 하고 신용카드 결제를 거부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내 카드시장에서 영세·중소가맹점(연매출 3억원 이하)은 수수료율 결정에서 카드사와 협상할 수 있는 수단이 거의 없다. 영세업체들도 의무적으로 가맹점으로 가입해야 하기 때문에 수수료율과 관계없이 모든 카드사와 계약을 맺고 있다. 식당 편의점 슈퍼마켓 등의 자영업자들은 소액결제 비중이 커서 수수료 부담이 더 크다. 금융 당국은 이런 구조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을 바로잡는 차원에서 수수료율 산정에 관여하고 있다.
가맹점수수료 체계를 시장에 맡기려면 영세가맹점의 협상력을 높이는 방안이 필요하다. 이때 걸림돌이 되는 게 카드의무수납제다. 일정금액 이하 결제의 경우 카드 결제를 거부하고 현금으로 받도록 제도를 바꾸면 카드수수료에 대한 가맹점의 선택권이 강해질 수 있다. 시장원리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당국이 영세·중소가맹점을 지원하기 위해 수수료를 일일이 낮출 필요도 없다는 설명이다.
카드의무수납제를 없애자는 주장은 2012년 수수료 개편 당시부터 꾸준히 제기됐었다. 하지만 자영업자의 세원 투명성과 세수 확보라는 명분에 밀려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1000원짜리 카드결제도 거부하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에 원가인상 요인이 되는 것”이라며 “의무수납제를 법적으로 고집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
카드 수수료 갈등 풀 카드는 뭔가… 카드의무수납제 없애고 정치적 간섭 줄여야
입력 2016-01-25 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