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보는 여성 엘리베이터까지 따라가 찍은 몰카범 법은 “무죄”라는데… 판결 기준 ‘갸우뚱’

입력 2016-01-25 04:00

‘스타일이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생면부지 여성을 엘리베이터 안까지 쫓아가 몰래 촬영한 20대 남성에게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노출이 심하지 않았고, 특정 신체 부위를 부각하지도 않아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불러일으킬 정도는 아니었다는 판단이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성폭력범죄처벌법상 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기소된 회사원 유모(29)씨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북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4일 밝혔다.

유씨는 2013년 11월∼2014년 5월 총 49건 ‘몰카’를 찍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중 48건은 대부분 지하철에서 건너편 좌석에 앉은 여성을 촬영한 것이었다. 여성 대부분이 레깅스나 스키니진 등을 착용하고 있었고, 허벅지나 엉덩이 등 특정 신체 부위가 부각되도록 특정 각도로 촬영한 것은 아니었다. 1·2심은 이 48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남은 사진 1장이 문제였다. 2014년 4월 유씨는 귀가하다 앞서가던 여성 A씨를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까지 따라가 상반신을 몰래 촬영했다. 얼굴은 찍히지 않았지만 검찰은 여성의 가슴이 부각된 촬영물로 판단해 기소했다.

1·2심 판단은 엇갈렸다. 무죄를 선고한 1심과 달리 2심 재판부는 “특정 신체 부위가 부각됐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엘리베이터까지 쫓아가 촬영한 의도와 경위를 고려하면 피해자의 수치심을 유발했다고 보기에 충분하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피해자는 유씨가 자신을 몰래 촬영한다는 걸 눈치챘으나 무서워서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고, 이후 CCTV를 확인해 신고했다. A씨는 “수치스럽고, 기분이 나빴다”고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일관되게 진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2심 판단을 다시 뒤집었다. 피해자가 레깅스와 긴팔 티셔츠를 입고 있어 노출된 신체 부위가 거의 없고, 가슴을 부각시킨 사진도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유씨의 행동은 분명 부적절하다”면서도 “사람의 시야에 통상적으로 비치는 부분을 그대로 촬영한 것”이라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몰카 범죄에서 법원 판단이 이처럼 엇갈리는 이유는 판례가 촬영 경위와 의도, 피해자의 노출 정도, 특정 신체 부위 부각 정도를 종합해 고려토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레깅스나 스키니진 등을 착용해 맨살이 드러나지 않고, 특정부위를 부각시키지 않으면 무죄가 선고되고 있다.

서울북부지법 형사9단독 박재경 판사도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짧은 치마 등을 입고 앉아 있는 여성들을 몰래 촬영한 혐의로 기소된 회사원 채모(55)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박 판사는 “다리 부분 맨살이 드러나기는 하지만 전신을 촬영한 것이며, 사람의 시야에 통상적으로 비치는 정도를 그대로 촬영했다”고 무죄 이유를 밝혔다.

반면 짧은 치마·바지 등을 착용해 드러난 신체 특정 부위를 근접촬영 등의 방식으로 부각시켜 찍으면 유죄를 선고하는 추세다. 울산지법은 지난해 11월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들을 뒤따라가 치마 속과 허벅지 등을 근접 촬영한 남성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