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의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DJ) 계승 논쟁이 점입가경이다. 난립한 야권 정당들이 호남 민심을 얻기 위해 너나 할 것 없이 DJ 정신을 외치고 있다. 여권의 ‘진박(진실한 친박근혜) 논쟁’ 못지않은 DJ 적자 경쟁에 대해 “DJ 정신은 보이지 않고, DJ와의 인연만 부각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쇄도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24일 DJ 삼남인 김홍걸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객원교수의 입당 기자회견을 가졌다. 김 교수는 “더민주는 아무리 당명이 바뀌더라도 DJ 정신과 노무현 정신이 합쳐진 60년 야당의 정통 본류”라며 “더 이상 김대중 노무현 두 분을 나눠선 안 된다. 아버님과 호남을 분열과 갈등의 수단으로 삼아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총선 출마 여부에 대해서는 “그 부분은 나중에 다시 분명하게 밝히겠다”고 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문재인 대표는 “김 교수는 우리 당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통합과 단결의 정신을 지키겠다고 어렵게 입당을 결심했다”고 응원했다. 김 교수는 2002년 ‘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돼 구속된 이후로는 현실정치와 거리를 둬 왔다. 하지만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에 참여하며 정치행보를 재개했다. 이달 초 이희호 여사의 ‘안철수 신당’ 지지 발언 논란 때는 직접 나서 “사실이 아니다”고 밝히기도 했다.
더민주뿐 아니라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도 이희호 여사를 만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말씀하셨던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당을 꼭 이루겠다”고 했다. 한상진 공동창당준비위원장은 지난 21일 전남도당 창당대회에서 “DJ가 저희에게 남긴 ‘행동하는 양심’이 없는 오늘날의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과 결연하게 싸울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국민회의 창당에 나선 천정배 의원은 아예 ‘뉴 DJ’를 길러내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동교동계도 마찬가지다. 권노갑 상임고문은 탈당하면서 “평생을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하며 우리나라 민주화를 이끌어왔지만, 정작 우리 당의 민주화는 이루지 못했다”고 했고, 박지원 의원의 탈당 기자회견문 제목은 ‘김대중 대통령께서 창당한 당을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장이 떠나며’였다.
때 아닌 ‘DJ 마케팅’은 야권이 이번 총선에서 호남민심을 두고 일대 결전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DJ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호남에서 승리하려면 그 후광이 필요한 것이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호남에서는 누가 더 DJ의 정치적 유산을 폭넓게 공유하는가가 핵심 변수”라며 “호남에서 DJ에 대한 호감도가 지표상으로 75% 수준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DJ 정신과 정치적 유산은 잘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상당하다. DJ가 말한 민주주의와 남북관계, 서민·중산층의 삶을 해결할 비전보다는 DJ 인사 영입 경쟁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DJ 정신이 과연 무엇인지는 잘 보이지 않고, DJ와의 혈연·인연만 내세운 경쟁만 계속되고 있다”며 “실망한 호남 유권자들의 투표율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도 “누가 계승했느냐가 아니라 어느 쪽이 타당하게 DJ 정신을 구현해내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며 “DJ 이름을 팔아서 속임수를 써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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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1-24 21:08